
중동 사태 장기화 우려에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20원 선을 넘어섰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나란히 3% 안팎으로 급락했다. 시장 전반에 유가 급등과 실물경기 둔화 공포가 번지자, 정부와 금융권은 시장 안정을 위한 대규모 재정 지원과 에너지 안보 강화 방안을 빼 들었다.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오후 4시 43분께 1521.1원까지 치솟았다. 오후 3시30분 주간 거래를 전장 대비 6.8원 오른 1515.7원으로 마감했으나, 이어진 야간 거래에서 상승 폭을 키웠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9년 3월 10일(장중 최고 1561.0원) 이후 17년만의 최고치다.
증시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61.57포인트(2.97%) 내린 5277.30에, 코스닥은 34.46포인트(3.02%) 하락한 1107.05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특히 코스피는 개장 직후 4% 넘게 폭락하며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으로 60일 이동평균선을 이탈하기도 했다. 이후 기관이 순매수로 돌아서고 미국과 이란 간 대화 가능성이 거론되며 낙폭을 일부 만회했으나, 외국인은 현·선물 시장에서 동반 순매도를 이어가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시장은 최근의 중동 리스크가 '유가 급등→인플레이션 압력 확대→수요 위축 및 경기 둔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 일부 지역의 정전 사태와 미군 추가 병력 도착 소식 등으로 전선 확대에 대한 공포도 커졌다. 홍해 리스크가 재부각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 대체 항로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 투자 심리를 극도로 위축시켰다.
이에 정부는 시장 안정을 위한 총력 대응에 나섰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국가경제자문회의·과학기술자문회의를 비롯해 산학연 주요 관계자들과 '중동전쟁 이후 경제대응책 간담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김 총리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안정을 최우선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에너지와 원자재 등 핵심 자원의 공급망을 꼼꼼히 분석해 산업 현장에 애로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간담회에서는 △시장 안정을 위한 신속한 재정 지원 △일관된 대국민·투자자 소통 △전략적 자원 비축량 확대 △수입선 다변화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등이 핵심 안건으로 다뤄졌다. 정부는 이를 종합해 비상경제본부를 중심으로 추가 정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금융권의 지원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정책금융기관, 민간 금융권이 참여하는 '금융부문 비상대응 TF'가 가동됐다. 피해 기업을 위한 정책금융 프로그램 규모도 기존 20조3000억 원에서 24조3000억원으로 4조원 확대하고, 사태 장기화 시 추가 지원도 검토하기로 했다.
5대 금융지주와 은행권 역시 피해 기업에 신규 자금 53조 원+α를 공급하고 만기 연장·상환 유예, 외환 수수료 및 금리 인하 등을 추진한다. 보험업권은 보험료 납입 유예와 신속한 보험금 지급을, 여전업권은 화물차 할부금융 원금 상환 유예와 주유·교통비 추가 지원 등을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