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반도체 설계 인력 만성 부족…계약학과 '즉시전력' 구원투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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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반도체 산업 인력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고급 설계나 연구개발(R&D) 인재는 부족, 구조적 미스매칭 문제가 계속 지적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필요 인력은 2031년 30만4000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족 인력은 최대 8만1000명, 설계를 포함한 전문 인력은 5만4000여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반도체 계약학과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등록금 전액 지원, 장학금, 취업 보장을 제공하며, 학부 단계부터 기업 실무에 최적화된 커리큘럼을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점이 특징이다. 학생들은 학부 때부터 고가 설계자동화도구(EDA)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여러 반도체 시제품을 한 웨이퍼에 구현하는 멀티 프로젝트 웨이퍼(MPW) 실습까지 경험하며 '즉시 전력감' 인재로 성장한다.

이는 기업이 직접 학과를 '예약'하고 학부 때부터 실무 역량을 극대화하는 독특한 구조다.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설계 인력난을 빠르게 해소할 전략으로 평가된다.

대만과 미국은 연구센터 협력이나 정부 지원 도제 훈련으로 실무 경험을 쌓지만, 한국처럼 기업이 대학 교육 과정에 깊이 개입해 즉시 투입 가능한 학사 인력을 대량 배출하는 체계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기존 반도체 인력 공급 모델과도 차별화했다.

◇기업 맞춤형 커리큘럼으로 '즉시 전력' 인재 양성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국내 대학은 협약 기업 실무 수요를 적극 반영한 차별화된 커리큘럼으로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국내 반도체 계약학과의 효시격인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2006년 설립)는 '성골' 학과로 불리며, 회로·소자, 아키텍처, 시스템 소프트웨어(SW) 등 3개 트랙으로 운영된다. 특히 최신 EDA 툴 실습과 공정-설계 최적화(DTCO) 교육에 강점을 보인다.

이후 삼성전자가 확대해 온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설계부터 SW까지 아우르는 다학제 융합 교육이 특징이다. 학생 주도 연구(UGRP)와 삼성전자 인턴십을 통해 실무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주력한다.

연구 중심 대학들의 면모도 뚜렷하다. KAIST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와 첨단 소자 분야에 특화됐으며, 석·박사 과정에 준하는 심화 연구 환경을 제공한다. 포스텍 반도체공학과는 탄탄한 기초 과학을 바탕으로 설계·재료·공정·SW 트랙을 균형 있게 운영하며, 실습 중심으로 학생들의 현장 적응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도입된 과학기술원 계열 대학들은 학·석사 5년 통합 과정으로 차별화된다. UNIST, DGIST, GIST 반도체공학과는 클린룸과 팹(Fab) 유사 환경에서 실습을 대폭 확대해 졸업과 동시에 설계 및 공정 분야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를 양성한다.

특히 GIST는 2024년 신설돼 2028년 첫 졸업생을 배출할 예정으로, 과기원 연구 역량과 실무 교육을 결합한 고난도 설계 교육을 지향한다.

SK하이닉스 협약 대학들도 저마다 강점을 내세우고 있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차세대 메모리 솔루션 역량 강화에 집중한 설계·소프트웨어 중심 커리큘럼을 운영하며,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실습과 인턴십을 대폭 강화해 현업 밀착형 인재를 키우고 있다. 실제 한양대는 최근 정시 경쟁률 11.8대 1을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끌었다.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설립 초기부터 '설계 특화' 이미지를 구축하며 시스템반도체 설계와 SW 최적화 교육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주요 반도체 계약학과 특성
주요 반도체 계약학과 특성

◇파운드리 강국 대만·미국은 '인턴십·도제훈련' 중시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는 대학과 활발한 산학협력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식 전용 '계약학과'는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TSMC는 국립대만대학(NTU), 국립양밍교통대학(NYCU), 국립청화대학(NTHU), 국립성공대학(NCKU) 등 주요 대학에 반도체 연구센터를 공동 설립하고 커리큘럼 개발과 연구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또한 대학에 핀펫 기술 설계 자료와 실습 지원을 제공하는 유니버시티 핀펫 프로그램(University FinFET Program)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제 학사 프로그램(Taipei Tech의 반도체 제조공정 프로그램)과 해외 우수 인재 대상 6개월 집중 육성 프로그램(STIPT)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은 대부분 연구 중심 협력, 인턴십, 단기 훈련, 장학금 형태로 운영되며 학부 정원 배정과 취업 보장을 결합한 한국식 양성 모델과는 거리가 있다.

미국 역시 반도체특별법(CHIPS and Science Act, 2022년)을 통해 대규모 정부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인력 양성을 추진 중이지만, 한국과 같은 기업 주도 계약학과 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TSMC 애리조나, 인텔, 글로벌파운드리스(GF) 등 기업들은 애리조나 주립대학(ASU)과 커뮤니티 칼리지 등과 협력해 도제훈련(Registered Apprenticeship Program)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12~18개월 동안 현장 OJT(On-the-Job Training)와 기술 교육을 병행하며, 주로 팹 기술자·유지보수 인력을 대상으로 한다. 정부 주도 기술자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학사급 설계 인력을 학부부터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한국식 모델과는 운영 방식과 대상이 다르다.

이형두 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