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기관투자자 참여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기관투자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토큰화 자산과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정산 등 실사용 영역으로 확장되면서다.
캐서린 첸 바이낸스 VIP·기관 부문 총괄은 14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크립토 시장에 기관 자금 유입을 이끈 요인으로 △ETF를 통한 투자 접근성 개선 △토큰화 MMF 등 전통 금융상품의 디지털자산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정산 효율성 확대 △주요국 규제 체계 정비를 꼽았다.
바이낸스가 말하는 기관은 법인, 펀드, 헤지펀드, 패밀리오피스, 자산관리사, 고액자산가, 은행·증권사 등 대형 투자자와 전문 투자자군을 포괄한다.
그는 “기관 진입이 눈에 띄게 빨라진 분기점은 블랙록의 비트코인 ETF 출시 이후”라며 “비트코인 ETF는 2년 만에 600억달러가 넘는 운용자산(AUM)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ETF는 기관들이 이 자산군을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출발점”이라며 “크립토, 특히 비트코인은 단순 투기가 아니라 기관 고객에게 자산배분의 문제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ETF뿐 아니라 토큰화 자산도 기관 참여 확대 요인으로 제시됐다. 첸 총괄은 “블랙록과 프랭클린템플턴은 모두 머니마켓펀드(MMF)를 토큰화했고, 초기 2억달러 수준이던 토큰화 MMF 운용자산은 각각 20억달러를 넘어섰다”며 “오늘날 가장 의미 있는 토큰화 자산 활용 사례는 전통 금융상품을 토큰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 MMF, 주식처럼 이미 수요가 있는 상품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관리해 결제와 정산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식이다.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도 기관 참여를 촉진한다. 첸 총괄은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와 정산 수단으로 더 우수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을 입증했다”며 “특히 송금 수요가 큰 국가에서 효율성이 크고, 지난 5년간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은 10배 증가했다”고 말했다.

기관의 관심은 단순 투자에서 '인프라 활용'으로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왜 디지털자산에 투자해야 하느냐'가 주된 질문이었다면, 최근에는 '디지털자산 인프라를 기존 비즈니스에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첸 총괄은 “이제는 새로운 인프라의 특성을 활용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금융 혁신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에서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가 마련되고 있는 점 역시 기관투자자 참여 확대를 이끄는 요인 중 하나다. 첸 총괄은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논의, 유럽의 MiCA, 홍콩의 스테이블코인 조례 등은 기관이 디지털자산 시장에 접근하는 방식을 명확히 해주는 장치로 평가했다. 그는 “규제가 없으면 대부분의 기관은 움직일 수 없다”며 “무엇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지 알려주는 명확한 체계가 없으면 전통 금융권 기관 참여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가정하게 된다. 규제 프레임워크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기관 참여를 촉진하는 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과 관련해서는 국내 기관의 관심은 크지만 규제 제약으로 직접 참여는 제한적인 단계라고 진단했다. 첸 총괄은 “기관이 실제 움직이기 위해서는 규제 명확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주요 시장 참여자들이 규제당국과 긴밀히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