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집단소송제, 소비자 보호와 산업 혁신의 균형 있는 설계가 중요

[ET시론] 집단소송제, 소비자 보호와 산업 혁신의 균형 있는 설계가 중요

디지털 경제 시대에 소비자 보호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과 데이터 기반 서비스가 일상화되면서 소비자 피해 유형 역시 복잡·다양해지고 있으며, 개별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피해를 구제받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집단소송법 제정안 역시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 업계 역시 소비자 권익 보호 강화라는 입법 취지 자체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소비자 신뢰는 결국 산업 성장의 기반이며,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 환경 없이는 지속 가능한 디지털 경제 역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집단소송제는 소비자 보호라는 순기능과 함께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 또한 상당한 제도인 만큼, 제도 설계 과정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디지털 플랫폼 산업은 인공지능(AI), 데이터, 물류, 핀테크, 콘텐츠 산업 등이 유기적으로 융합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경쟁 역시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 불확실성은 산업 경쟁력과 혁신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해외 주요국 역시 소비자 집단구제 제도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제도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함께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대표적인 집단소송 국가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법원의 엄격한 집단인증(Class Certification) 절차와 요건 심사를 통해 무분별한 소송 제기를 제한하고 있다. 집단의 공통성, 대표성, 적합성 등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집단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과 결합한 과도한 소송이 산업 활동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한 논의도 지속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소비자 집단구제 제도를 도입했지만, 국가별로 적용 범위를 제한하거나, 공인된 소비자단체 중심으로 소송 자격을 부여하는 등 상대적으로 신중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 보호라는 정책 목표와 함께 과도한 소송 남발, 기업 활동 위축, 투자 감소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소비자 보호와 산업 혁신, 균형 있는 집단소송제 필요
소비자 보호와 산업 혁신, 균형 있는 집단소송제 필요

우리나라 역시 이미 소비자기본법상 소비자단체소송제, 증권 분야 집단소송제 등을 단계적으로 도입·운영해 오고 있다. 따라서 해외 사례를 단순 확대 적용하기보다는 국내 산업 구조와 기업 현실, 글로벌 경쟁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한국형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현재 논의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검토돼야 할 부분은 '소급적용' 문제다. 법 시행 이전 행위까지 집단소송 대상으로 포함될 경우 기업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기업 활동은 장기간 투자와 사업 계획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만큼, 사후적으로 새로운 책임 구조가 적용되면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법적 안정성은 시장경제의 핵심 원칙 중 하나다. 특히 플랫폼·정보기술(IT) 산업은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고 서비스 구조가 복합적인 만큼 제도 변화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범위한 소급 적용은 국내 기업의 신규 투자와 혁신 의사결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옵트아웃(Opt-out)' 방식 역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자동으로 소송 대상에 포함되는 구조는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 피해 규모와 무관하게 대규모 소송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대응 역량이 제한적인 스타트업과 중소 플랫폼 기업에는 상당한 경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플랫폼 산업은 대기업뿐 아니라 수많은 중소 판매자·창작자·스타트업이 함께 연결된 생태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특정 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법적 부담은 결국 입점 판매자, 중소 파트너사, 소비자 가격 부담 등으로 연쇄적으로 전가될 가능성도 있다.

'입증책임 전환'과 '증거개시 제도' 역시 산업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반으로 운영되는 만큼 모든 과정을 사후적으로 입증하는 데에는 기술적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알고리즘 운영 구조와 데이터 처리 방식은 기업의 핵심 영업비밀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광범위한 증거개시가 허용될 경우 핵심 기술 유출 우려와 함께 글로벌 경쟁력 약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실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역시 알고리즘과 데이터 처리 구조를 핵심 경쟁력으로 관리하는 만큼, 우리 역시 산업 현실에 부합하는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소비자 보호 강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 역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 소비자 보호와 산업 혁신은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균형 있게 추진돼야 할 과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제도의 균형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시장 환경과 기업이 안정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제도 환경이 함께 마련될 때 디지털 경제의 지속 가능성도 확보될 수 있다. 집단소송제 역시 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도 산업 경쟁력과 혁신 생태계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소비자와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제도,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집단소송제의 방향일 것이다.

조성현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회장 csh@kolsa.or.kr

〈필자〉 조성현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회장은 국내 온라인쇼핑 및 디지털 플랫폼 산업 발전과 자율규제 활성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세종대 유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한국유통학회·한국경제법학회·한국소비자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하도급법학회 대외협력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 한국제품안전협회 제품안전정보 오픈포럼 운영위원,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 자문위원 등을 맡아 유통·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플랫폼 규제 분야에서 활발한 정책 및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