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AI전략노트] 〈28〉투표용지 위의 미래

6월 3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 거기에 14석의 국회의원 재보궐까지. 유권자의 손끝이 바쁜 하루가 될 겁니다. 그런데 선거판을 들여다보면 좀 답답합니다. 여당은 균형발전과 인공지능(AI) 신산업, 야당은 주거안정과 규제완화. 익숙한 단어들이 공약집을 채우고 있지만, 정작 우리 앞에 닥친 진짜 문제의 윤곽을 그려주는 후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진짜 문제가 뭐냐고요. 똑같은 챗GPT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오늘 뭐 먹지?”를 묻고, 다른 사람은 같은 도구로 혼자 원격회사 플랫폼을 굴립니다. 매슈 갤러거라는 미국 청년이 실제로 해낸 일입니다. 직원 두 명으로. 실리콘밸리의 신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골드만삭스가 전 세계 3억개 일자리가 자동화 영향권에 들어온다고 경고한 게 작년입니다. 미국에서는 25세 이하 기술직 실업률이 다른 연령대보다 3%포인트나 높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습니다. IMF는 한국 일자리의 절반이 AI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문제는 이 충격이 고르게 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프롬프팅 역량, 그러니까 AI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고 결과의 오류를 걸러내는 능력은 교육 환경과 문화 자본에 크게 좌우됩니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좋은 질문을 접해본 적이 있어야 합니다. 격차가 선형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는 구조입니다. 지식에서 질문으로, 정보에서 구조화로, 격차의 축 자체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AI 기반 신용평가 모델은 소셜 미디어 활동부터 스마트폰 사용 습관까지 수천 개 데이터 포인트를 빨아들입니다. 부유한 고객에게는 최적의 투자 기회가, 취약 계층에게는 심리적 약점을 파고드는 고금리 상품이 정교하게 배달됩니다. 디지털 레드라이닝. 1930년대 빨간 잉크가 그었던 선을 이제는 수백만 줄의 학습 데이터가 긋고 있는 셈이죠.

이 두 가지 흐름, 일자리 소멸과 금융 계층화가 합쳐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숫자가 말해줍니다. 옥스팜의 올해 1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억만장자의 자산이 2025년 한 해 동안 2.5조달러 늘었습니다. 인류 하위 절반인 41억명이 가진 전체 자산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생산성은 올라가는데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어드는 구조. 자본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겁니다. AI 때문에 사라지는 일자리를 어떻게 할 건지, 그 빈자리를 채울 재교육 인프라는 누가 만들 건지,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차별을 어떤 규칙으로 막을 건지. 어느 후보도 정당도, 전체 그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AI법을 발효시켜 신용평가와 채용을 고위험 영역으로 분류하고 투명성을 의무화했는데, 우리 선거판에서 이런 수준의 구체적 논의는 찾기 어렵습니다.

지방자치가 이 문제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충남도는 올해 중기부의 '지역 주도형 AI 대전환' 사업에 선정됐고, 경기도는 AI 특구를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지방정부가 AI 전환의 최전선에 서게 되는 겁니다. 공장이 있는 곳, 중소기업이 밀집한 곳, 청년이 떠나는 곳. 전부 지방입니다. 그 현장에서 실직한 40대 제조업 노동자에게 무엇을 제안할 수 있느냐가 이번 선거의 진짜 쟁점이어야 합니다.


수능이 암기력과 문제풀이 속도를 중시하게 만들었듯, 사회가 어떤 측정 기준을 세우느냐가 어떤 능력을 키울지를 결정합니다. 같은 도구를 쥐었다는 사실이 평등의 증거가 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도구를 쥔 손의 방향이 갈라지기 시작한 이 시점에, 투표용지 위의 선택이 기술 격차의 폭을 좁힐 수도, 되돌릴 수 없이 벌릴 수도 있습니다. 6월 3일, 우리는 단체장을 뽑는 게 아니라 미래의 방향을 고른다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김경진의 AI전략노트] 〈28〉투표용지 위의 미래

김경진 전 국회의원 2016kimk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