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를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하고 설계할 수 있는 인재를 얼마나 빠르게 길러내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대학 AI 교육도 변화를 시작했다. 이론과 코딩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프로젝트·인턴십·채용을 연결하는 실무형 교육, 반도체·바이오·제조 등 산업과 AI를 결합한 융합형 교육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국내외 대학 AI 교육 현장을 중심으로 산업 수요 기반 인재양성 체계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 짚어본다.
#5월 말 충남대학교 공대 실습실에서는 학생들이 2인 1조로 팀을 꾸려 로봇이 미로를 탈출하도록 알고리즘을 수정하고 있었다. 직접 작성한 알고리즘으로 로봇이 길을 찾도록 반복 테스트하고 실패하면 다시 코드를 수정해 센서 값을 조정했다. 수업은 강의보다 학생들끼리 전략을 토론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수업 마지막 열리는 챌린지에서 우승하기 위해 미로 중간 '루프 구간'을 빠져나가는 알고리즘, 움직이는 장애물을 피하는 전략 등을 두고 자연스럽게 경쟁도 벌어졌다.
한국 대학 AI 교육은 지금 '컴퓨터공학 확대' 수준을 넘어 산업 현장과 직접 연결되는 실전형 체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충남대학교 사례는 그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AI 이론을 가르치는 수준이 아니라, 기업 수요 기반의 프로젝트·현장실습·온디바이스 AI·로보틱스까지 연결한 '산업형 AI 교육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온디바이스·피지컬 AI 중심 체계 재편
충남대는 교육부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 사업을 통해 기존 컴퓨터융합학부와 인공지능학과를 통합·확대한 '컴퓨터인공지능학부'를 중심으로 AI 인재 양성 체계를 전면 재설계했다. 학과 정원도 기존 115명에서 174명으로 확대했다. 단순 증원이 아니라 '온디바이스 AI'와 '피지컬 AI'를 핵심 방향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최근 글로벌 AI 산업 흐름과 맞닿아 있다. 기존 생성형 AI 경쟁이 클라우드 기반 거대언어모델(LLM)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AI를 실제 하드웨어와 결합하는 방향으로 산업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스마트폰·로봇·드론·자율주행차처럼 기기 내부에서 직접 AI를 구동하는 '온디바이스 AI',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는 로봇과 모빌리티에 AI를 적용하는 '피지컬 AI'가 대표적이다. 충남대는 이를 대학 교육 단계에서부터 반영하고 있다.
실제 교육 과정도 산업 흐름에 맞춰 세분화됐다. 기존 AI 교육이 '인공지능 전반을 넓게 배우지만 성과가 분산되고 단계 구분이 모호했다'는 문제 인식 아래, 초급·중급·고급 단계별 체계를 명확히 재구성했다.
특히 데이터 AI, 생성형 온디바이스 AI, 온디바이스 AI 시스템 등 3개 트랙을 별도로 운영한다. 학생들은 AI프로그래밍기초, 기계학습, 딥러닝 같은 기초 과목을 거친 뒤 자연어처리, 생성학습, 강화학습, AI시스템설계, 모델최적화실무 같은 심화 과정을 선택하게 된다.
◇일반 학기 수업·단기 집중형 '이원화'
눈에 띄는 점은 '몰입형 교육'이다. 충남대는 일반 학기형 수업과 별도로 단기 집중형 AI 교육을 병행하는 이원화 구조를 설계했다. 단순히 이론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집중 훈련하는 방식이다.
야간 실습 과목도 운영한다. AI실전코딩, AI공개소프트웨어실습 등 일부 과목은 산업체 수요에 맞춰 주중 야간 시간대에 개설된다. 이는 재직자·현장형 교육까지 염두에 둔 구조다.
교육 방식 역시 전통적인 강의 중심 대학 교육과는 다르다. 충남대는 모든 프로그램에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을 포함시켰다. 로봇·모빌리티 기반 온디바이스 AI 프로젝트를 실제 사례 중심으로 수행한다. 산업체 문제은행 기반 팀 프로젝트도 운영한다. 기업 현업 멘토가 프로젝트 기획부터 구현·배포까지 주간 단위로 참여하는 애자일(Agile) 방식이다. 슬랙(Slack), 지라(Jira), 깃(Git) 같은 실제 협업 도구 교육도 포함된다.
이는 한국 AI 고등교육이 단순 '코딩 교육'에서 '실무형 AI 시스템 구축 교육'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충남대는 교육 운영 원칙 자체를 'AI 모델링 및 시스템 구축에 대한 실습 위주 운영'이라고 명시했다.
◇밀착 산학협력으로 실효성 확대
산학협력 강도도 과거와 다르다. 충남대는 네이버클라우드, 노타AI, 쎄트렉아이, 파블로항공 등 기업들과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단순 산학협력 수준이 아니라 기업 직무를 교육과정 설계 단계부터 반영했다. 위성항공·드론군집비행 중심 프로그램도 포함했다.
5년간 이들 기업으로부터 취업 연계 확약서까지 제출받았다. 이는 한국 대학 AI 교육이 더 이상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채용·현장·산업 공급망과 직접 연결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충남대 모델은 지역 전략 산업과 AI 교육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전·충청권의 연구소·방산·항공·딥테크 산업과 AI 교육을 묶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ETRI, 항공우주연구원, 대전테크노파크, KISTI 등 대덕특구 인프라를 교육에 직접 활용한다.
학생들은 단순히 공개 데이터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안심구역 기반 미개방 데이터와 실증 장비 데이터를 활용하게 된다. AI 교육이 점점 실제 산업 데이터·현장 데이터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AI 교육의 대중화
'AI 교육의 대중화'도 꾀한다. 충남대는 비전공자도 참여 가능한 공개 모집형 AI 교육을 운영한다. 의류학과·심리학과·생명정보융합학과까지 연계 전공으로 포함했다. 이는 AI가 특정 공학 전공만의 기술이 아니라 전 산업의 기본 도구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교육 방식도 기존 학위 중심에서 '마이크로디그리'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충남대는 AI 시스템, 데이터 AI, 생성형 온디바이스 AI 등 세부 분야별 마이크로디그리를 운영할 예정이다. 짧고 집중적인 실무 역량 인증 체계를 도입하는 셈이다. 이는 전통적인 4년제 학위보다 산업 현장에서 바로 활용 가능한 '세분화된 기술 인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교수 평가 체계까지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충남대는 산학협력 활동, 현장 프로젝트 지도, 이러닝 콘텐츠 개발 등을 교원 평가에 반영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AI 시대 대학이 더 이상 논문 중심 구조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고, 산업 연결성과 교육 실무 역량까지 요구받고 있다는 신호다.
충남대 사례는 현재 한국 AI 고등교육이 단순 'AI 학과 신설' 단계를 넘어 △산업 현장형 교육 △온디바이스·피지컬 AI 중심 재편 △프로젝트·현장실습 강화 △산학연 공동 교육 △비전공자 확대 △마이크로디그리 기반 세분화 인증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이는 중국식 국가 전략형 AI 인재 양성과 미국식 산업 연계형 AI 교육 사이에서, 한국이 '지역 산업 생태계 기반 실무형 AI 대학 모델'을 구축하려는 흐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기일 충남대 교수 겸 AI부트캠프 사업단장은 “1년 이내의 단기간 집중교육과정 운영으로 산업계가 필요로하는 실무인력을 양성하고자 한다”며 “충남대는 피지컬 AI 분야의 인력양성을 위한 핵심 캠프로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향후 기업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