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칼럼〉아이의 가능성을 넓히는 가장 큰 힘, 부모의 응원입니다

문애리 덕성여대 석좌교수.
문애리 덕성여대 석좌교수.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향한 관심이 대학 입시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던 반도체 계약학과가 이제는 수험생들이 선호하는 학과가 됐다. 최근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의 한국 방문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것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그의 행보는 단순한 기업인의 방한을 넘어, AI와 반도체가 앞으로 우리 산업과 일자리, 아이들의 진로를 어떻게 바꿀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기술의 변화가 빠를수록 아이가 어떤 길을 상상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성적이나 전망만큼이나 부모와 주변의 기대가 있다. 베란다 화분의 나무를 떠올려보자. 같은 씨앗이라도 어떤 그릇에 심기느냐에 따라 자라는 모습은 달라진다. 넓은 땅에 뿌리 내린 나무는 크게 자라지만, 좁은 화분 안의 나무는 그 그릇의 크기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아이의 진로도 이와 닮아 있다. 부모의 기대와 응원은 아이가 꿈을 키우는 화분의 크기를 넓혀 준다.

지난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이 기혼자를 대상으로 “자녀가 있다면 어떤 전공을 권하겠는가”를 물은 결과, 딸에게 자연·공학 계열을 권하겠다는 응답은 39.7%로 아들(52.1%)보다 낮았다. 딸의 능력을 믿지 않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여자가 이공계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오래된 걱정이 부모도 모르는 사이 아이의 가능성을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이공계는 과거와 다르다. AI·반도체·로봇·바이오 등 미래 산업은 이미 우리 삶의 중심으로 들어왔고, 이 분야의 인재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미래 산업의 여성 종사자는 여전히 적으며, 특히 AI 분야 여성 종사자는 아직 15.1%에 불과하다. 여성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은, 역량 있는 여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래 기술은 남학생만의 영역도, 특정 성별이 더 잘할 수 있는 길도 아니다. 다양한 시선과 경험이 더해질 때 기술은 더 안전하고 넓게 발전한다.

[에듀플러스]〈칼럼〉아이의 가능성을 넓히는 가장 큰 힘, 부모의 응원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어릴 때부터 열어주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WISET은 여학생들이 이공계에 흥미를 갖고 자신의 진로로 상상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초·중·고 여학생을 위한 '여학생 공학주간'은 전공 체험과 진로 멘토링을 제공하며 매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대학원생과 여중고생이 한 팀을 이뤄 연구하는 '공학연구팀제'에 참여한 여학생의 이공계 대학 진학률은 70%를 넘는다. 적절한 경험과 기대가 주어졌을 때, 여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이공계에 흥미를 느끼고 그 길을 이어간다.

기대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교사가 “이 아이는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학생을 대했을 때, 실제 능력 차이가 없던 아이들의 성취가 유의미하게 높아졌다는 연구도 있다. 긍정적 기대가 실제 결과를 만든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교실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작동한다.

딸이 수학 문제 앞에서 눈을 반짝이거나 과학 실험실에서 흥미를 보인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응원해 주시길 바란다.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는 결국 아이의 몫이다. 다만 그 선택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부모가 건네는 말과 시선은 아이의 가능성을 넓히는 힘이 된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걱정보다 더 큰 응원일지 모른다.

문애리 덕성여대 석좌교수 armoon@duksung.ac.kr

◆문애리 이사장은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생화학·생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덕성여대 석좌교수이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중앙약사심의위원회 민간위원장과 UN 과학기술전문가그룹 위원 등을 맡아 과학기술 정책과 국제 협력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권미현 기자 m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