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이 클로드 페이블 5와 미토스 5를 내놓았을 때, 업계는 추론 능력과 사이버 보안 성능에 먼저 감탄했다. 그 감탄은 사흘을 가지 못했다. 출시와 동시에 보안 필터를 우회하는 탈옥 취약점이 드러났고, 미국 당국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접속을 끊었다. 막은 대상이 외국인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심지어 자사의 외국인 직원까지 차단했다.
주목할 대목은 차단의 방식이다. 과거 미국의 기술 통제는 반도체 같은 하드웨어를 겨눴다. 이번엔 달랐다. 사용자의 국적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소프트웨어 API 접근 권한 자체를 끊었다. 국경 없는 기술로 여겨지던 인공지능(AI)이 행정명령 한 줄로 특정 국가 기업의 서비스를 실시간 셧다운시킬 수 있는 국경 기술로 돌변한 것이다. 명확한 기술 기준도 없었다. 정치적 명분만으로 강행됐으니, 이제 규제의 시점과 범위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남의 일이 아니다. 앤트로픽의 사이버 보안 협력체 프로젝트 글래스윙에 참여해 모델 접근권을 확보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SK텔레콤, 그리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정부 지침 한 번에 직접 타격을 받았다. 미국 빅테크 API에 비즈니스를 통째로 얹어온 국내 스타트업들은 하루아침에 인프라 전환을 강요당했다. 자체 서비스를 굴린다 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모델을 켜고 끄는 킬 스위치를 미국 정부가 쥐고 있는 한, 우리가 말하는 기술 독립은 허울에 불과하다.
당장 급한 불은 안전망으로 끈다. 평소 쓰던 해외 모델이 어느 날 막히면, 성능이 좀 떨어지더라도 즉시 다른 모델로 돌려 서비스만은 멈추지 않게 하는 장치다. 전기가 나갔을 때 돌아가는 비상 발전기와 같다. 다만 분명히 해두자. 이건 차선책이다. 애초에 그 모델을 쓴 이유가 압도적 성능이었던 만큼, 갈아탄 모델이 같은 일을 해줄 리 없다. 비상 발전기로 공장 전체를 평소처럼 돌릴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그러니 폴백은 버티는 시간을 벌어줄 뿐, 해답이 아니다. 해답은 결국 미국의 최상위 모델과 겨룰 수 있는, 그러면서 누구도 함부로 끄지 못하는 우리만의 모델을 갖는 데 있다.
소버린 AI, 곧 한국 만의 독자 인프라를 만들자는 말은 그동안 구호에 가까웠다. 이번 사태로 그것은 생존 조건이 됐다. 특정 국가에 휘둘리지 않는 자체 초거대 모델에 과감히 투자하고, 핵심 업무만큼은 클라우드 의존을 낮춰 자체 인프라에 오픈소스 모델을 직접 올리는 내재화로 가야 한다. 한두 개의 미국 모델에만 매달리는 건 전 재산을 한 종목에 묶어둔 것과 같다. 모델을 다변화해 위험을 흩뜨려야 한다.
혼자 갈 길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 사이에서,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은 제3지대의 AI 개발국들이 있다.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자체 모델 투자에 공을 들이는 아랍 국가들, 그리고 싱가포르 같은 기술 강소국. 우리와 처지가 다르지 않은 이들과 손잡고 독자적 AI 주권을 함께 방어하는 컨소시엄을, 한국이 앞장서 끌어갈 수 있다. 탈옥 같은 취약점이 통제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설계 단계부터 보안과 윤리를 심어 넣는 기술력도 키워야 한다. AI가 언젠가 핵무기처럼 국제 조약의 통제를 받게 된다면, 독자 모델을 가진 나라만이 그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결국 질문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장 성능 좋은 미국 모델을 누가 먼저 쓰느냐를 다퉜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다르다. 내가 쓰는 AI가 내일도 멈추지 않는다는 보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성능 경쟁이 아니라 연속성의 문제다.
사흘이면 충분했다. 우리가 의존하던 지능이 꺼지는 데 걸린 시간이. 다음 사흘이 오기 전에, 켜고 끄는 권한을 조금이라도 우리 손으로 가져와야 한다.

김경진 전 국회의원 2016kimk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