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통항 60일 이후 이란·오만이 관리
핵도 고농축 우라늄 희석 원칙만 명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에 공식 서명하면서 양국 간 협상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공개된 합의문 내용을 둘러싸고 미국이 이란에 과도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만찬 도중 종전 MOU 문서에 서명했다. 앞서 J.D. 밴스 부통령과 양국 대표단은 전자 서명을 마쳤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서명으로 합의는 공식 발효됐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이란은 향후 60일 동안 핵 프로그램,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경제 제재 완화, 동결 자산 해제 등을 포함한 최종 협상에 착수한다. 양측 실무대표단은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첫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개된 MOU 전문을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는 이란이 협상 구도를 유리하게 설정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 싱크탱크 외교협회의 중동 전문가 레이 타케이는 “이번 문서는 미국보다 이란의 우선순위를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둘러싼 조항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합의문은 국제 선박의 자유 통항을 60일간 보장한 뒤 이후 관리 체계를 이란과 오만이 결정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온 국제 수로의 자유로운 이용 원칙과 배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분야에서도 이란은 상당한 실익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합의문에는 약 3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 기금 조성과 원유 수출에 대한 한시적 제재 면제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해외 동결 자산 해제 문제 역시 향후 협상 의제로 명시됐다.
반면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을 희석한다는 원칙적 수준의 내용만 담겨 있어 미국이 요구해 온 우라늄 농축권 영구 박탈이나 핵시설 완전 폐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이 핵심 요구 사항을 대부분 지켜낸 반면 미국은 경제적·외교적 양보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MOU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초기 내세웠던 목표와 비교할 때 사실상 후퇴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이란 정권 교체, 핵무기 개발 능력 제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무력화, 친이란 무장세력 해체 등을 목표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이번 합의문에는 이러한 요구가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내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완패”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2015년 이란 핵합의를 “퍼주기”라고 비판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협정으로 이란이 얻게 될 경제적 혜택 규모가 당시보다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비판을 일축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MOU는 우리가 달성하려 했던 목표 이상을 이뤄낸 합의”라며 “전쟁을 끝내고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었으며,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틀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3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 기금과 관련해 “이란이 책임 있게 행동한다면 국제사회가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합의를 위반하면 다시 강력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결 자산 해제에 대해서는 “그 돈은 미국의 돈이 아니라 이란의 돈”이라며 “언젠가는 돌려줘야 할 자산”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종 협상이 60일 안에 타결되지 않을 경우 군사 행동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이후에는 “60일을 절대적인 시한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이번 MOU가 전쟁 종식을 위한 정치적 선언에 가까우며, 핵 문제와 제재 완화,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등 핵심 쟁점은 앞으로 진행될 본협상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60일간 이어질 협상 결과에 따라 이번 합의가 중동 안정의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의 출발점이 될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