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 종결을 위한 양해각서(MOU)에서 이란의 미사일·드론 역량 제한을 사실상 제외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페르시아만 지역 우방국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18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과 이란 간 MOU에 따르면 양국은 전쟁 종식을 위한 정치적 합의와 함께 이란 재건 및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미국은 역내 파트너들과 협력해 최소 3,000억 달러(약 460조 원) 규모의 재건 계획을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문에는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개발·운용 문제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쟁 초기 미국 정부가 내세웠던 목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2월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 개시 직후 “이란의 미사일 산업을 완전히 초토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작전 목표 중 하나로 “이란의 탄도미사일 역량을 파괴하고 재건을 막는 것”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를 비판하며 핵 프로그램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개발 문제도 다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의 입장은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다른 국가들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란이 일부 탄도미사일을 보유하는 것 자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조금 불공정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이란의 제한적 미사일 보유를 용인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걸프 지역 국가들은 그동안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 위협에 직접 노출돼 왔다. 전쟁 기간에도 공항과 에너지 시설, 호텔, 군사기지 등이 공격 대상이 됐던 만큼 이란의 미사일 역량 유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인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후세인 이비시 연구원은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걸프 국가들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걸프 국가들이 향후 우크라이나와 한국의 방공·미사일 대응 경험을 참고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쿠웨이트대의 역사학자 바데르 알사이프는 미사일과 드론 문제가 MOU에서 제외된 데 대해 “미국이 걸프 우방국들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이란 핵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현실적 타협일 수 있지만, 동시에 미국의 전통적 중동 안보 보장 역할에 대한 의문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걸프 국가들이 향후 자체 방공망 강화와 안보 다변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 안보 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