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 양자보안, 먼 미래가 아니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5/05/news-p.v1.20260505.f7d9ae760670432aa178622a99b84d93_P3.jpg)
집에 불이 난 뒤 소화기를 사봐야 소용없다. 보안도 마찬가지다. 양자컴퓨터가 실제 공격에 쓰일 시점은 불확실하지만, 암호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이상 미리 대비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양자컴퓨터가 언제 기존 암호를 무력화할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5년 뒤일 수도, 10년 뒤일 수도, 그보다 더 늦을 수도 있다. 아직 실험실 수준의 기술이라는 신중론도 있다.
하지만 보안은 사고가 난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발생 가능성이 있는 위험을 미리 줄이는 일이다.
양자 위협이 까다로운 이유는 피해가 미래에만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공격자는 지금 암호화된 데이터를 모아뒀다가 나중에 양자컴퓨터로 풀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 의료정보, 금융거래 기록, 산업기밀처럼 오래 보호해야 할 정보는 오늘 뚫리지 않아도 내일 위험해질 수 있다.
공개키 암호는 디지털 사회의 신뢰 기반이다. 인터넷뱅킹, 전자서명, 인증서 등 대부분의 서비스가 이 위에서 작동한다. 양자컴퓨터가 이를 흔들면 단순한 개인정보 유출을 넘어 사칭, 거래 위조, 서비스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양자내성암호(PQC) 표준화와 정부 차원의 전환 준비를 앞세우고 있다. 중국도 양자컴퓨팅과 양자통신을 전략기술로 키우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기술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양자보안은 선택 과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일부가 됐다.
한국도 연구개발(R&D) 성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금융, 의료, 통신, 에너지, 공공행정처럼 민감 정보와 핵심 기능을 다루는 분야부터 암호 사용 현황을 점검해야 한다. 어떤 시스템에 어떤 암호가 쓰이는지 파악하고, 교체 우선순위와 예산, 책임 주체를 정해야 한다.
양자보안은 먼 미래의 담론이 아니다. 디지털 신뢰를 지키기 위한 현재의 투자다.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미루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민간 자율 대응만으로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정부가 민감 분야의 암호 전환 기준과 지원책을 서둘러 제시해야 한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