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고용가능성 높여야”·“성과공유 체계 재설계 필요”…AI 시대 노동 해법 제시

인공지능(AI)이 산업과 노동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가운데 정부가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계약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한다. AI 기술혁신이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크게 높이는 동시에 일자리와 임금체계, 사회안전망까지 변화시키는 만큼 산업화 시대 제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혁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고용노동부는 14일 서울 피스앤파크 컨벤션에서 'AI 기술혁신에 발맞춘 새로운 사회 혁신의 길' 토론회를 개최했다. 노동계와 경영계, 학계, 국회, 전문가 등이 참석한 이번 토론회는 AI 시대 노동과 복지, 분배 체계의 방향을 논의하는 첫 정부 주최 사회혁신 토론회다. 정부는 이번 논의를 시작으로 연내 '질문 중심 녹서'를 발간하고 사회적 대화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AI 대전환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산업과 노동, 복지, 민주주의까지 바꾸는 문명사적 전환”이라며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기존 문법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모두 담아낼 수 없는 만큼 인간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정답을 제시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만나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촉진자가 되겠다”며 노동계와 경영계는 물론 청년과 플랫폼 종사자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AI 기술패권이 특정 기업에 막대한 수익을 집중시키면서 기존 노사관계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분배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AI 반도체 시장 확대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술패권 기업의 수익이 급증하면서 성과급과 임금격차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발표자료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러한 변화가 노동시장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성과급 교섭 기준 재정립과 확대된 성과공유 체계를 제안했다. 기업의 성과를 영업이익이 아닌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논의하는 방안과 함께 원·하청 노동자까지 참여하는 확대 교섭,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목적세 검토, 국가임금위원회 설치 등을 새로운 사회계약의 제도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계를 구체화해 노동시장 내 임금격차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AI와 디지털 전환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양날의 검'이라고 진단했다. AI 활용 역량을 갖춘 대기업과 고숙련 인력은 생산성과 수익성이 크게 높아지는 반면 중소기업과 저숙련 인력은 기술 소외와 임금 정체를 겪을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발표자료에서는 이를 'AI 시대의 승자독식 구조'로 설명하며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AI 시대에는 특정 일자리를 보호하는 '직장보장(Job Security)'보다 직업훈련과 평생학습, 전직 지원 등을 통해 노동자의 적응력을 높이는 '고용가능성 보장(Employment Security)' 중심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를 단순히 임금으로 나누는 '연대임금'에서 산업 혁신과 인재 양성에 재투자하는 '연대투자' 방식으로 사회적 성과공유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노사단체와 전문가, 청년, 플랫폼 노동 종사자 등이 참여하는 'AI 시대 새로운 사회혁신 녹서 논의체'를 구성해 다음 달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연내 질문 중심의 녹서를 발간하고 AI 시대에 걸맞은 사회혁신 과제를 구체화할 방침이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