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완성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 간 강 대 강 대치는 단순한 연례행사 성격의 임금협상 갈등을 넘어선다. 경고성 부분파업을 거쳐 갈등의 파고가 높아진 현 상황은 제조업 전반에 불어닥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압박이 노사 관계에 어떤 균열을 내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진통은 단순히 보상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술적 협상을 넘어, 다가오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한국 자동차 산업이 생존할 수 있을지를 묻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대치 국면이 유독 격렬한 양상을 띠는 배경에는 전기차 캐즘(수요 둔화), 자율주행 주도권 경쟁, 인공지능(AI)과 로봇의 현장 도입이라는 전례 없는 환경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노동계가 첨단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등 자동화 확대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완전월급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단순한 이권 투쟁이라기보다, 급변하는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지 모른다는 근원적 공포가 투영된 방어 기제에 가깝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사들이 생존을 위해 모든 자원을 미래차 연구개발(R&D)과 생산 효율화에 쏟아붓는 상황에서, 과거의 투쟁 방식을 답습한 장기 대치는 모두의 발목을 잡는 자해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측이 보상안을 제시했음에도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 수위를 높이는 것은 대중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더욱이 이미 법적 합의가 끝난 과거의 사안을 다시 쟁점화하거나 상식선을 벗어난 정년 연장 요구를 고수하는 것은 변화의 파도를 바리케이드로 막아서겠다는 시대착오적 고집으로 비칠 뿐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노사의 극한 대립이 가져오는 고통이 산업 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로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대기업 생산 라인이 멈춰 서며 발생하는 거대한 생산 차질은 대기업 스스로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완성차 조립 라인 가동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3·4차 중소 협력사들은 완충 장치 없이 고스란히 조업 단축과 경영난이라는 위기에 내몰린다. 내연기관에서 미래차 부품사로의 체질 개선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대기업 노사의 장기 대치는 감당하기 힘든 치명타다. 대기업 정규직의 권익 보장을 위한 투쟁이 하부 생태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역설적 구조가 반복되는 셈이다.
글로벌 통상 장벽이 높아지고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한 지금, 내수 생산 기지의 안정성은 국가적 생존 요건이다. 따라서 국내 완성차의 노사 관계 패러다임 역시 기술의 진화 속도에 맞춰 제로섬식 힘겨루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기술 도입에 빗장을 걸기보다 일자리 소멸에 대비해 노동자의 직무 전환과 재교육을 어떻게 지원하고 제도화할지, 그리고 성장의 과실을 협력업체까지 아우르는 생태계 전체로 어떻게 분배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한다면, 그 거위가 죽은 뒤에는 로봇도 인간도 함께 서 있을 곳이 없다.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없는 대치는 결국 공멸로 귀결될 뿐이다. 노사 양측이 단기적 승패를 넘어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이성적이고 결단력 있는 타협안을 도출해야 할 때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