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ICT기금, 미래인프라 젖줄로 새판 짜야

대한민국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이 빈사 상태에 빠졌다. 올해 두 기금 순자산 적자 규모는 4조7015억원으로 역대 최대치 기록을 갈아치울 거라 한다.

기금 부채 역시 5조6000억원을 넘어서며 단순한 재원 고갈 수준을 넘어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끌어온 장기 차입금으로 연명하는 파행적 구조는 공적기금의 명맥만 유지해 줄 뿐이다.

이 같은 위기는 기존 기금의 수입 구조와 산업 지형의 변화 사이에서 발생한 근본적 불일치에 기인한다. 전통 통신사의 주파수 할당대가와 지상파·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사의 분담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수입 모델은 통신·방송 시장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기금 자체의 전진도 멈춰 세웠다.

주파수 재할당 등으로 한시적 수입이 늘어도 더 많이 불어난 빚을 갚느라 정작 필요한 사업 운용예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수입·지출 항목 재정비나 회계적 합산 수준의 기금 통합을 넘어, ICT 기금의 구조와 방향성을 원점부터 전면 재정립해야 한다. 인공지능(AI) 대전환과 디지털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과거 방식에 매몰된 기금 구조로는 국가적 ICT 혁신을 이끌어갈 수 없다.

우선 기금 명칭과 과거 유산에 얽매여 이미 매출과 이용자가 줄어드는 기존 사업자에게만 중과세를 부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OTT, 실시간 스트리밍 등 디지털 생태계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며 실질적 수익을 거두는 신흥 망 활용 사업자들이 적정한 책임을 지도록 기금 제도를 고도화해야 한다.

트래픽 비중과 국내 매출, 이용자 수 등을 종합 고려한 합리적 부과 기준을 마련하고, 글로벌 빅테크에 대해서도 정당한 생태계 유지 비용을 분담시키는 법적·제도적 검증 체계를 갖춰야 한다.

나아가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대규모 국책 펀드가 조성되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ICT 기금 역시 AI 네트워킹, 6G(세대) 통신망 등 국가 차원의 핵심 미래 인프라 구축과 개선을 주도할 '미래형 ICT 혁신 펀드'로 대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중복·선심성 사업은 일반회계로 이관하거나 과감히 털어내고 확보된 새 재원은 AI 국가 인프라 확충,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 개발, 디지털 포용 및 사이버 보안 등 국가 미래 생존을 좌우할 필수 분야에 집중 투입해야 한다. 기금의 틀을 깨는 전향적이고 근본적인 새판 짜기만이 대한민국 ICT 재도약의 튼튼한 토대가 될 것이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editoria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