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AI 시대, 생명의 원리를 배워 질병을 치료한다

2024년 노벨화학상의 절반은 인공지능(AI)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 박사에게 수여됐다. 최근 허사비스는 앞으로 10여년 안에 AI가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과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역시 AI가 난치질환 치료와 건강수명 연장을 앞당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챗봇을 통해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AI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경험했다. 이제 AI는 이미지와 영상, 로봇을 넘어 생명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세계는 생명의 원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설계하는 AI를 개발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섰다.

일반적으로 AI는 많은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성능이 좋아진다. 그래서 데이터를 '현대의 석유'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이오와 의료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바이오·의료 데이터는 생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개인정보 보호와 연구 윤리 등 고려해야 할 문제도 많다. 따라서 한정된 자원으로 데이터를 무작정 많이 모으기보다, AI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데이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질병을 치료하는 AI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생명을 이야기하기 전에 조금 더 익숙한 예를 생각해 보자. 어떤 자동차에서 브레이크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고 하자. 원인을 찾기 위해 설계도를 분석하고 사고 기록을 모으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설계가 제조 과정에 어떻게 반영됐고, 어떤 부품에 문제가 생겼으며, 그 문제가 자동차의 작동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실제 사고로 이어졌는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서 봐야 한다. 설계에서 제조와 작동, 사고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이해해야 비로소 문제의 원인을 찾고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바이오데이텅, 의료데이터, 바이오-의료 연계 데이터 비교
바이오데이텅, 의료데이터, 바이오-의료 연계 데이터 비교

생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암 환자의 유전자 정보는 설계도에, 병원 진료기록은 사고 기록에 해당한다. 둘 다 매우 중요한 정보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사이에서 몸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유전적 요인과 환경, 생활 습관이 단백질을 비롯한 생체분자의 구조와 상호작용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 변화가 세포와 조직, 장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암의 발생과 진행으로 이어졌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치료 후 몸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왜 환자마다 효과가 달랐는지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전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질병을 더 일찍 발견하고, 질병의 원인이 되는 과정을 차단하며,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더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알파폴드는 그동안 축적된 방대한 바이오데이터를 활용해 단백질 구조 예측에 큰 도약을 이뤘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부품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능력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이제는 부품을 넘어 자동차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 생명도 마찬가지다. 생체분자 수준의 이해를 질병과 치료에 대한 이해로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바이오데이터와 의료데이터를 각각 따로 축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동차를 이해하려면 설계도와 사고 기록만이 아니라 그 사이의 제조 과정과 운행 과정까지 함께 봐야 하듯이, 생명을 이해하려면 바이오데이터와 의료데이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데이터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의료데이터는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생산됐고, 바이오데이터는 생명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축적됐다. 각각의 목적에는 충실했지만, 자동차 설계도와 제조 기록, 운행 정보, 사고 기록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듯이, 분자에서 환자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AI가 학습하도록 설계된 데이터는 아니었다.

AI 시대에는 새로운 종류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유전자와 단백질, 세포와 조직, 질병의 발생과 진행, 치료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하나의 과정으로 이어지는지를 담은 데이터다. 중요한 것은 기존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질문에 답할지 먼저 정하고, 그에 맞게 데이터를 처음부터 연결된 형태로 설계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바이오와 의료를 하나의 인과적 흐름으로 연결하도록 설계된 데이터를 '바이오-의료 연계 데이터'라고 부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2024년부터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100만명 규모의 임상 정보와 유전체 데이터를 구축해 정밀의료와 바이오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매우 중요한 국가 프로젝트다. 우리나라 바이오AI 경쟁력의 출발점이 될 중요한 사업이다.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가 중요한 기반이라면, 그 위에서 AI가 생명의 원리를 학습할 수 있도록 바이오와 의료를 연결하는 새로운 데이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생체분자의 변화가 세포와 조직을 거쳐 질병과 치료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담아내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진료 정보뿐 아니라 유전체와 단백질, 세포와 조직의 상태, 생활환경과 시간에 따른 변화, 치료 전후의 반응을 목적에 맞게 함께 수집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각각의 데이터를 따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연결된 형태로 설계하는 것이다. 그래야 데이터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질병의 원인을 발견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지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다. 바이오-의료 연계 데이터를 구축하자는 것은 개인정보를 희생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최고 수준의 개인정보 보호를 전제로, 개인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미래 세대의 질병 치료와 건강수명 연장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자산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어떤 데이터를 왜 수집하는지, 어떻게 보호하고 누구를 위해 활용하는지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그 성과를 국민과 함께 나누는 체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우리는 이미 AI가 언어를 배우는 시대를 경험했다. 이제 AI가 생명 원리를 배우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지 더 큰 AI 모델도, 무조건 더 많은 데이터도 아니다.

자동차를 이해하기 위해 설계도와 사고 기록을 연결해야 하듯이,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이오와 의료를 연결하는 새로운 데이터가 필요하다. 바이오-의료 연계 데이터는 AI만을 위한 데이터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생명의 원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국가 지식 인프라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갤럭스 대표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갤럭스 대표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갤럭스 대표 chaokseok@galux.co.kr

〈필자〉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 화학 석사·박사 학위 취득했다. 이후 시카고대, 메사추세츠공과대, 캘리포니아대 등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계산생물학, 단백질 구조 예측 등을 연구 분야로 삼으며 주요 단백질 예측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활동하며 2020년 인공지능(AI) 기반 단백질 설계·신약 개발 기업 갤럭스를 설립했다. 2025년에는 AI의 연구개발 활용과 과학 주권 확보를 한국과학AI포럼 창립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