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이 메타(Hey Meta), 동영상 촬영해줘.”
서울 불광천 산책로. 안경에 말을 걸자 알림음과 함께 녹화를 알리는 LED 표시등이 켜졌다. 달리는 시선을 따라 풍경이 영상으로 기록됐다. 안경다리에 내장된 오픈 이어 스피커 덕분에 별도 이어폰 없이 음악 감상도 가능했다. 런던 박물관에선 안경이 나만의 가이드가 돼줬다. 따로 검색할 필요 없이 고대 유물을 바라보며 무엇인지 묻자 스피커로 답변이 흘러나왔다.
이동통신 3사가 국내 출시한 메타 인공지능(AI) 글래스 '레이밴 메타'를 국내와 해외서 직접 사용해봤다. 이 제품은 음성만으로 AI에게 정보를 얻거나 촬영, 실시간 번역이 가능한 스마트 기기다. 스마트폰이 손안의 AI 비서 시대를 열었다면, AI 안경은 '핸즈프리 AI' 시대를 이끌 핵심 디바이스로 꼽힌다.
레이밴 메타의 가장 직관적 경험은 영상·사진 촬영이다. 안경테에 카메라 렌즈가 탑재돼 1인칭 시점의 영상을 UHD 고해상도로 촬영할 수 있다. 촬영물은 숏폼 등 모바일에 최적화된 세로형으로 저장된다. 음성만으로 소셜미디어(SNS)에 업로드하거나 라이브 스트리밍 촬영도 가능했다. 다만 영상은 최대 3분으로 긴 호흡의 기록은 어려웠다.

스마트폰을 꺼낼 필요 없이 음악 감상부터 볼륨 조절, 영상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러닝시에도 유용했다. 가민 등 스마트워치와 연동하면 러닝 페이스·심박수 등 실시간 운동 데이터 기반으로 최적 코스도 추천해준다. 무게도 50g으로 일반 안경보다는 다소 무겁지만 충분히 착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해외에서는 메타 AI 비서가 여행가이드 역할을 했다. 관람객으로 붐비는 런던 대영박물관 전시장에서도 음성인식은 비교적 정확했다. 파르테논 신전 조각 등 눈앞 유물에 대해 곧바로 질문하고 한국어로 답을 얻었다. 다만 답변의 깊이는 기대에 못 미쳤다. 작품명과 시대, 의미를 짚어주는 해설 대신 일반적 묘사에 그쳤다.
네트워크 의존도 구조적 한계였다. 레이밴 메타는 셀룰러 모델이 있는 스마트워치와 달리 자체 통신 회선이 없는 블루투스 전용 기기다. 스마트폰에 '메타 AI' 앱을 설치하고 페어링해야만 작동한다. 해외에서 데이터 연결이 불안정해지자 AI 호출이 늦어지거나 답변이 중간에 끊겼다. 국내에서도 날씨 등 단순 질의에는 빠르게 답했지만 질문이 길어지면 부정확한 답변을 내놓거나 응답이 중단됐다.

실시간 번역 기능은 인상깊었다. 메타 AI 앱에서 번역을 실행하고 언어를 설정한 뒤 해외 영상을 재생하자, 영어 음성이 앱 화면에 텍스트로 옮겨지는 동시에 한국어 음성으로 번역돼 안경 스피커로 출력됐다. 다만 발화가 빠른 구간에서는 문맥이 끊겨 자막 없는 콘텐츠를 음성만으로 따라가는데 역부족이었다.
직접 체험한 AI 안경은 아직까진 스마트폰을 대체할 독립적 AI기기보단 스마트폰의 눈·귀를 확장한 보조수단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이통 3사가 판매에 나선 것은 새로운 폼팩터로 꼽히는 AI 글래스 시장을 초기에 선점하기 위함이다. 할부금 할인으로 진입 문턱을 낮춰 시장 수요를 가늠하고, AI 서비스의 새로운 고객 접점을 확보하겠다는 포석이다. AI 안경이 대중화 단계에 들어서면 자체 AI 서비스와 연동한 특화 서비스 경쟁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 런던==남궁경 기자 nk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