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질주하는 산업, 멈춰선 교사 양성…대만은 기업이 먼저 나섰다

[기고]질주하는 산업, 멈춰선 교사 양성…대만은 기업이 먼저 나섰다

현수 직업교육정책연구소 소장

교직생활과 퇴직 후 직업교육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본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현장에서는 늘 이런 식이었다. 산업이 먼저 학과 이름을 내걸면 교사는 그다음에 만들어져야 했다. 기술이 언제 뜨고 질 것인지 그것까지는 학교가 먼저 점칠 수 없다고 치자.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보다 훨씬 예측 가능한 지점에서 생긴다. 마이스터고나 협약형 특성화고로 지정받으려면 학교는 몇 해 전부터 학과 재구조화 계획을, 어떤 산업 분야로 갈지까지 정해서 신청서를 낸다. 심사와 지정까지 걸리는 시간만도 짧지 않다. 다시 말해 '이 학교가 반도체를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산업의 급변과 달리 이미 몇 년 전부터 서류상으로 예고된 정보다. 그럼에도 그 신청서가 접수되는 순간부터 교사를 어떻게 확보할지는 교육청도 교육부도 아닌 그 학교와 그 교사 개인의 몫으로 넘겨진다. 새 설비가 들어오고 현수막이 걸리는 날에야 교무실에서 '이 과목을 누가 가르치느냐'는 질문이 처음 나오는 그것도 이 때문이다. 예측할 수 있었던 수요를, 예측할 수 있는 시점에, 제도가 아니라 개별 학교와 교사가 떠안는 구조. 이것이 우리 교육정책의 고질병이다. 문제가 곪아 터진 뒤에야 처방을 내놓는 사후약방문. 백 년은커녕, 이미 신청서에 적혀 있는 몇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습관이다.

그 오래된 습관을 다시 확인시켜 준 것이 최근 이병욱 충남대 교수의 글이었다. '반도체를, 로봇을, AI를 가르칠 교사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새 표시과목이 생긴 것이 2000년, 사반세기 26년이 지나서야 겨우 '간호'가 신설됐다. 다시 확인해 보니 간호과의 사정은 이보다 더 참담했다. 전국직업계고간호교육정상화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특성화고 간호과는 표시과목 논의 시작부터 따져 무려 30여 년간 자격 없는 교사 구조를 견뎌야 했고 그 세월 동안 수업의 절반 이상을 기간제 교사와 강사가 떠맡았다. 올해 부산전자공고와 용인반도체마이스터고(가칭)가 반도체 마이스터고로 새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같은 걱정이 앞섰다. 학교 간판은 바뀌었는데 그 교실에 설 반도체 표시과목 교사는 이번에도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만 바뀐 채 가르칠 사람 없는 그 공백은 고스란히 되풀이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사례가 눈에 들어왔다. 대만이다. 대만 정부가 2022년부터 반도체·AI 등 첨단 분야 인재 양성에 나서자 TSMC는 정부보다 먼저, 정부와 나란히 움직였다. TSMC는 교육부와 손잡고 전국 서른여섯 개 고교에 반도체 수업을 열면서 학생을 가르치기에 앞서 교사부터 준비시켰다. 정부의 결정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기업이 직접 교사 연수의 주체로 나선 것이다. 대만이 30년 가까운 시행착오를 건너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병욱 교수는 이 문제를 풀 세 가지 해법(표시과목 인증위원회, 부전공 연수 법제화, NCS 연계 실습 인프라) 을 제안했다. 이 해법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세 기관이 각자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을 10년 단위 국가교육발전계획에 이 인증위원회를 상설 전문위원회로 못 박아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법은 이 발전계획에 학제·교원정책을 명시하도록 하고, 관계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그 계획에 따라 매년 시행계획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 번 발전계획에 들어가면 교육부도, 어느 정권의 교육감도 임의로 무시할 수 없는 구조가 된다는 뜻이다. 교육부는 변명을 내려놓아야 한다. '간호' 표시과목은 실제로 입법예고에서 시행까지 석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30년은 절차의 시간이 아니라 교육부가 그 필요를 의제로 삼지 않은 시간이었다. 시도교육청은 이미 손에 쥔 권한을 쓰면 된다. 교원자격검정령은 교육감이 지정하고 인정하는 교육과정을 30학점 이상 이수하면 부전공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표시과목 신설을 기다릴 필요 없이, 교육청이 지금 당장 반도체·AI 부전공 연수과정을 열고 인정하면 된다. 국교위는 정권을 초월하는 지속성을, 교육부는 이미 있는 신속 절차를, 교육청은 이미 있는 인정 권한을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층위 모두에 기업이 들어갈 자리가 있다. 인증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부전공 연수의 실습장으로, 시도교육청과의 협약 파트너로.

그러나 표시과목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반도체 다음에는 양자, 양자 다음에는 또 다른 이름의 산업이 온다. 새 표시과목을 만들 때마다 몇 달이 걸린다면 산업이 이름을 바꿀 때마다 교원 제도는 계속 한 박자씩 늦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표시과목 제도 바깥에도 안전판이 필요하다. 임용된 이후에도 표시과목 이외의 인접·신산업 분야를 가르칠 수 있도록 인정하는 유연한 제도, 즉 부전공 연수를 넘어 교원의 교과 범위 자체를 신산업에 맞춰 확장해 주는 장치다. 더 근본적으로는 교육부 교원정책부서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일반계 교원의 표시과목은 수십 년을 그대로 두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국어·수학·영어가 5년마다 뒤집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업계 교원이 다뤄야 할 산업 기술은 5년, 10년 단위로 통째로 바뀐다. 일반계와 직업계는 애초에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다른 종류의 교원 정책이 필요한데 지금 제도는 이 둘을 하나의 틀 안에 욱여넣고 있다. 이병욱 교수의 세 가지 해법이 표시과목이라는 '문'을 여는 일이라면 이 인식의 전환은 그 문을 자꾸 새로 만들어야 하는 수고 자체를 줄이는 일이다.

삼성전자와 SK는 이번 3대 메가 프로젝트에서만 수백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중 극히 일부만 떼어 내도 앞서 말한 세 자리 어디든 지금 당장 채울 수 있다. 다만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대만은 이미 2022년부터 이 일을 시작해 지금 서른여섯 개 고교에서 수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가 오늘 국교위·교육부·교육청·기업이 함께 움직이기로 결정한다 해도 그 순간 이미 대만보다 몇 년은 늦은 출발이다.

1500조원이 넘는 투자를 발표하는 자리에 교사 양성을 위한 기업의 몫도 함께 발표됐다면 어땠을까. 사후약방문을 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산업을 만든 바로 그 손이 그 산업을 교육계와 함께 가르칠 교사도 함께 기르면 된다. 다만 이제는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이어야 한다. 지금 시작해도 대만과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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