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는 하늘을 탓하지 않는다.” 세상의 변수는 두 층위로 나뉜다.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없는 상수요인(constant)과,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가변요인(variable)이다. 하늘은 전자에 속한다. 때맞춰 내리는 비, 적당한 일조량, 서리 없는 절기 같은 것들이다. 파종과 경작은 후자에 속한다. 씨앗을 고르는 안목, 밭을 가는 부지런함, 물길을 내는 정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심리는 이 둘을 습관적으로 혼동한다. 흉작 앞에서 '기후 탓'을 하는 것이 경작의 태만을 자인하는 것보다 심리적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대운(大運)은 사주명리학에서 10년 단위로 바뀌는 큰 운의 흐름을 말한다.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몇 살에 첫 대운이 시작되는지(대운수)를 계산해서 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대운 자체가 성패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동일한 대운 안에서도 누군가는 도약하고 누군가는 침잠한다. 이는 신비주의가 아니라 개연성의 문제다. 준비된 주체와 그렇지 않은 주체는 동일한 기회 앞에서 상이한 속도와 결과를 낳는다.
30여년 인수합병(M&A)업계에 종사해오며 깨달은 것이 있다. 딜을 무산시키는 원인의 상당수는 인수자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원인은 세 갈래로 압축된다. 인수자금의 확보 여부, 대상기업 분석의 사전 정밀도, 그리고 성급한 진행으로 인해 스스로 불리한 매도 조건을 자초하는 오류다. 이 세가지 원인은 공통된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다. 준비의 부재다. 대상기업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경우 실사과정에서 딜이 무산되고, 조급하게 움직인 자는 계약 조율과정에서 매도자 우위에 부딪친다. 자금부족은 말할 것도 없다. 재협상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다.
성급함이 남기는 아쉬움은 유독 크다. 협상은 결국 누가 먼저 초조해지느냐의 싸움이고, 상대적 우위는 정확히 태도의 차이다. 조급한 태도는 스스로 패를 노출한다. 일정을 재촉하고, 생각 없이 답하고, 양해각서도 체결하기 전에 공장을 방문하겠다고 한다. 양보를 서두르는 인수자를 매도자는 금세 읽어낸다. “이 인수자는 이 거래가 절실하다.” 이 한 문장이 확인되는 순간, 가격은 이미 오르기 시작한다.
바람은 준비된 돛에만 배를 밀어준다. 같은 바람이 불어도 어떤 배는 항구를 떠나고, 어떤 배는 그 바람을 흘려 보낸다. 차이는 바람의 세기가 아니라 돛의 상태다. 찢어진 돛, 접혀 있는 돛, 방향을 맞추지 못한 돛은 아무리 좋은 바람 앞에서도 무용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나무를 베는 데 여섯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네 시간을 도끼날을 가는 데 쓰겠다” 라고 말했다. 기회는 매번 공평하게 지나가지만, 그것을 붙잡을 제대로 된 돛을 펴 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간다.
M&A 시장에서 인수자가 마주하는 좋은 매물, 우호적인 금리, 역동적인 사이클은 언제고 한 번씩 찾아오는 바람이다. 그런데 그것을 현실의 거래로 전환시키는 매개, 즉 자금의 유동성, 대상기업에 대한 검증된 이해, 절제된 협상 리듬은 별개의 층위에서 준비돼 있어야 한다. 이 매개가 결여된 인수자는 좋은 바람이 불어와도 그저 흘려 보낼 뿐이고 운이 나빴다며 자신을 위로한다. 하늘을, 대운을, 바람을 원망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의 잠재태는 지금 현실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이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2020년 퇴임 후 대형로펌 M&A팀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 첫 디지털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