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는 제조 과정에서 전기는 물론 엄청난 양의 물을 먹는다. 웨이퍼 세정 등에 막대한 양의 초순수가 필요한 만큼 안정적인 용수 공급망은 전력망과 함께 반도체 산업의 생명줄이다.
서남권 반도체 산업단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이곳에 하루 65만㎥의 공업용수를 공급할 계획이다. 동복댐을 비롯해 주암·장흥·보성강·나주댐 등의 수원을 활용하고 하수 재이용까지 검토한다.
문제는 65만㎥라는 숫자 다음부터다.
물을 확보했다고 반도체 공장까지 저절로 흘러가는 게 아니다. 댐과 관로를 구축하고 인허가를 거쳐야 한다. 지자체와 협의하고 기존 물 이용자와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주민도 설득해야 한다. 동복댐 증고를 둘러싸고 지역에서 주민 참여와 상생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를 현장에서 실행해야 할 핵심 기관이 한국수자원공사다. 수공은 차기 사장 선임 절차를 다시 밟고 있다. 1차 공모가 최종 임명으로 이어지지 않은 뒤 재공모에 들어갔다. 대형 국가 인프라 사업을 앞두고 사장 인선을 더 늦춰선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사장이 되느냐다. 반도체 산업용수를 적기에 공급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지역 간 물 갈등까지 풀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업과 주민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능력도 필요하다.
인선 기준도 분명해야 한다. 물 산업과 대형 인프라에 대한 이해, 사업을 완수할 실행력과 갈등조정 능력을 우선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가 전문성을 앞서서는 곤란하다.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는 최첨단 공정과 장비만 보이기 쉽다. 하지만 공장을 실제로 돌리는 것은 전기와 물이라는 기초 인프라다. 정부가 서남권 반도체 산단에 하루 65만㎥의 물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실행이다.
반도체는 물을 먹는다. 그 물을 제때 흘려보낼 수장이 필요하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