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추진중인 미국 통합제련소 건설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에 MBK-영풍 연합이 사전 협의없이 서한을 보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크루서블 관련 리셉션을 미국에서 개최한 데 이은 행보로 주주권한 남용이 도마위에 올랐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영풍·MBK 측은 지난달 9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프로젝트 크루서블 관련 리셉션을 개최한데 이어 참석자들에게 이메일과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리셉션 당시 자신들을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그룹으로 소개하며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과 협력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참석자들에게 보낸 이메일과 서한에는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관리·운영관리 시스템, 및 인력을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과 함께 미국 관계자들의 석포제련소 견학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제련업계에서는 고려아연 울산 온산제련소와 영풍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는 생산 품목뿐 아니라 원료 처리 방식과 공정 구성, 유가금속 회수 기술까지 사업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이유 등으로 양사의 경영 실적 역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양사의 2분기 실적이 발표되면서 이런 차이점이 더욱 부각하는 모양새다.
고려아연이 미국에 건설하려는 제련소는 단순한 아연제련소가 아니라 아연·연·동과 귀금속, 전략광물을 한 사업장에서 생산하는 '통합제련소'다. 미국 정부가 이 제련소 신설을 유치하고 투자를 단행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주로 아연과 황산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석포제련소의 인력과 시스템을 이 제련소에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두 제련소의 차이는 생산 제품의 종류에서 차별화된다. 석포제련소는 아연 제련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구체적으로는 아연과 황산을 주로 생산하면서 일부 전기동과 은부산물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는 아연·연·동 공정을 연계해 금·은 등 귀금속과 인듐·안티모니·비스무트 등 다양한 희소·전략금속을 함께 생산한다. 각 공정에서 발생하는 중간물과 부산물을 다른 공정의 원료로 활용해 원료에 포함된 유가금속을 최대한 회수하는 것이 온산제련소 통합공정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여기에 더해 고려아연은 국내외 수요 증가 등을 감안해 갈륨과 게르마늄 생산도 준비하고 있다. 두 금속 생산이 본격화하면 포트폴리오가 더욱 확대되는 셈이다.
이는 양사의 경영실적으로 이어진다. 영풍의 경우 아연 제련 사업 환경이 악화할 경우 수익성이 크게 악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고려아연의 경우 아연이나 연 제품 수익성이 다소 둔화하더라도 귀금속과 희소금속을 통해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다.
실제 영풍의 올해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약 15억 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분기 433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실적 반등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2분기 들어 다시 위축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약 6조 3,730억 원, 영업이익은 약 5,87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같은 기간 매출액 약 3조 8,250억 원, 영업이익 약 2,590억 원보다 각각 66.6%, 126.8% 증가한 실적을 냈다. 특히 고려아연은 핵심광물 분야 투자 확대와 회수율 증대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수익성이 한층 강화했다는 평가다.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 크루서블 역시 이러한 온산제련소의 통합제련 모델을 미국에 구현하는 사업이다. 생산 예정 품목은 아연·연·동 등 기초금속과 금·은 등 귀금속,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텔루륨·팔라듐·갈륨·게르마늄 등 12종이며 반도체용 황산도 생산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11개 품목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광물에 해당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서 열린 '프로젝트 크루서블' 공식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결국 프로젝트 크루서블의 성격은 미국에 아연제련소 하나를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연·연·동 공정을 연계해 귀금속과 전략광물까지 동시에 회수하는 복합 제련 플랫폼을 구축하는 사업에 가깝다는 평가다. 업계에서 석포제련소의 기술과 운영인력 등을 프로젝트 크루서블을 지원하는 데 활용한다는 구상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정부가 프로젝트에 대규모 정책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배경 역시 고려아연의 통합제련 기술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일반적인 아연 생산능력뿐 아니라 AI·반도체·항공우주·방산 등에 필요한 갈륨·게르마늄·인듐·안티모니 등 전략광물을 안정적으로 분리·회수해 상업 규모로 생산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제련소가 요구하는 핵심은 단순한 아연 생산 경험이 아니라 여러 비철금속과 전략광물을 하나의 통합공정에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온산제련소와 석포제련소의 기술적 차이나 생산 구조의 차이 등을 고려하면 석포의 운영 시스템을 미국 통합제련소에 적용한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입장문을 내고 “미국 현지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추진과 이해관계자와의 협력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최근 현지 소통 행사를 개최했다”며 “이번 소통의 핵심은 특정 제련소의 주력 생산 제품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떤 금속을 추출하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을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석포제련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규제를 받는 청정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지난 10년간 과감한 친환경 설비 투자와 혁신 기술을 통해 과거의 환경문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고도 했다.

이경민 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