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영리단체의 채용 공고를 열어본 적 있는가. 채용 인원은 고작 한두 명, 그마저도 단기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는 청년들이 갈 곳은 부족하고, 혁신적 아이디어를 낸 인재는 “일단 취업부터 하라”는 조언 앞에 꿈을 접는다. 기부 생태계의 자원 쏠림과 청년 일자리 절벽은 얼핏 무관해 보이지만, 자원이 소수 조직에 집중될수록 새로운 시도를 하는 초기 조직은 인재를 붙잡을 여력조차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재원이 현장 구석구석까지 흐르지 않으면, 청년들이 문제 해결형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낼 무대 자체가 좁아진다.
카메라 앞의 눈물에 기댄 동정 유발형 모금이 관행으로 굳어진 사이, 기부 시장의 쏠림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세청이 지난 5월 처음 발간한 '2026년 공익법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공익법인의 연간 기부금 수익 11조 원 가운데 상위 15개 법인이 38%인 4조 원을 흡수했다. 다만 이 상위권에는 대형 구호 NGO뿐 아니라 학교법인·의료법인, 대기업 계열 재단도 함께 포함돼 있다. 즉 문제의 본질은 특정 NGO의 '독식'이라기보다, 공익 부문 전반에서 자원이 소수 대형 조직에 구조적으로 쏠려 있다는 데 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복지 사각지대 최전선의 풀뿌리 현장은 재정난과 인력난에 허덕이고, 정작 청년들이 도전할 첫 무대가 사라진다.
이 왜곡을 깰 대안이 바로 '비영리 창업(Non-profit Startup)'이다. 보조금과 시혜적 활동에 머물던 기존 틀을 넘어, 벤처처럼 기민한 사업 방법론과 최신 AI 기술을 도입해 기후위기, 교육격차, 지역소멸 등 SDGs의 난제를 비즈니스적 접근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경제 주체다. 투자자의 재무적 이익 대신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며, 청년 스스로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왜 일자리를 남이 만들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청년 스스로 답을 제시하는 새로운 생태계다.
하지만 지분 매각을 전제하지 않는 비영리 스타트업은 전통 금융의 사각지대에 놓여 초기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일회성 지원금을 나눠주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프로젝트의 가치에 공감하는 시민 소액 참여에 재단·기업의 매칭 펀드를 결합하는 '참여형 펀딩 모델'이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GEF)이 진행한 '모두의기부' 1기 챌린지에는 124개 비영리 창업팀과 1,279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아직 초기 단계의 시도이지만, 거대 단체를 거치지 않고도 자원이 현장으로 곧바로 흐르는 소액 다수 모금 구조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사례다. 나아가 지역 복지 거점과 중간지원조직을 연계해 이 같은 직거래 유통망을 전국 단위로 넓혀가고 있다.
이 생태계가 안착하기 위한 마지막 열쇠는 정부와 지자체의 '디지털 인프라 지원 혁신'이다. 현장의 위기는 열정의 결핍이 아닌 행정 과부하와 모금 테크의 부재에서 온다. 수억 원을 들여 방치될 일회성 전산망 구축(SI)이나 PC 보급 같은 관행적 예산을 멈춰야 한다. 대신 실무자가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검증된 AI 행정비서 및 모금 자동화 솔루션의 '구독료(SaaS)'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체당 월 몇만 원 수준의 구독 지원이라도, 목적 없이 소진되는 일회성 전산 예산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현장에 AI 인프라를 보급하고 행정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실제 효과의 규모는 시범사업을 통해 검증해 나갈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카메라 앞의 눈물이 아니며,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청년수당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며 스스로 일자리를 개척하는 청년 비영리 창업가들에게 시민의 기부는 미래를 바꾸는 지분이 된다. 낡은 동정 소비를 멈추고, 기술과 솔루션 구독, 그리고 청년의 담대한 도전이 어우러진 건강한 비영리 창업 생태계를 열어야 할 때다.
김병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사무총장·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