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7000억 행정 통합, 업무 효율성 막는 '데이터 먹통'을 막아라

김지현 한국딥러닝 대표
김지현 한국딥러닝 대표

2023년 네트워크 장비 포트 고장이 전국 행정업무를 흔들었다. 인증 데이터가 유실되며 시도·새올행정시스템 접속 장애가 발생했고, 주민센터 민원과 정부24까지 차질을 빚었다. 공통 기반 앞단의 작은 결함이 인증과 연계체계를 거쳐 전국으로 확산된 것이다.

정부는 17개 광역시도와 228개 시군구 행정시스템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개편하는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29년까지 노후 시스템을 통합하고 데이터를 이관하는 대형 사업이다. 사업비는 70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 가지를 놓치면 업무가 과거에 묶이게 된다. 데이터베이스의 테이블과 레코드는 옮겼지만, 신청서와 증빙자료 같은 첨부문서의 정보가 검증 가능한 업무 데이터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다.

'데이터 먹통'은 시스템이 멈춘 상태가 아니라 파일은 옮겼지만 정보는 옮기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비정형 문서의 정보가 업무와 연결되지 않아 공무원이 파일을 다시 열고 값을 입력하고 여러 자료를 대조해야 하는 상태다.

현재 공공행정의 병목도 마찬가지다. 민원 상당수가 온라인으로 접수되고 증빙자료도 PDF나 이미지로 제출되지만, 마지막에는 여전히 공무원의 손이 필요하다. 첨부파일에서 정보를 찾아 입력하고, 서류 간 값의 일치와 기존 행정정보·조례와의 충돌 여부를 판단한다. 감사나 이의제기가 발생하면 과거 문서를 다시 읽으며 당시 판단 근거까지 복원해야 한다.

차세대 사업의 데이터 이관은 기존 레코드를 복사하는 데서 끝나선 안 된다. 행정 판단의 근거가 담긴 문서를 시스템이 활용할 수 있는 업무 데이터로 구조화해야 한다. 표와 병합 셀, 체크박스 등 문서 구조를 복원하고 서로 다른 표현을 같은 행정 개념으로 정규화하며, 신청서와 증빙서류 등 파일을 하나의 업무로 연결하는 일이다. 추출된 값이 어느 문서의 어느 위치에서 나왔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행정에서는 설명 가능한 결과가 중요하다. 자동화가 특정 값을 제시해도 출처와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면 담당자는 결국 원문을 다시 읽어야 하고 전수검수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러 공공·금융기관 현장에서 글자는 읽었지만 항목 간 관계를 복원하지 못하고, 값은 추출했지만 업무 기준과 연결하지 못하는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다.

그래서 문서 구조화는 개별 화면에 붙는 OCR 기능이나 데이터 이관의 부속 과업으로 다뤄져선 안 된다. 정형 데이터베이스와 비정형 문서를 연결하고, 행정시스템이 실제 사용할 데이터를 만드는 독립적인 기반 계층으로 설계해야 한다.

문서 구조화는 표준화를 포기하는 기술이 아니다. 표준화의 대상을 문서의 모양에서 시스템이 사용할 데이터의 의미로 옮기는 일이다. 가능성은 확인됐다. 국내 한 대형 투자기관은 형식이 일정하지 않은 법인등기부등본 9000건 이상을 문서 이해 기술로 처리했다.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찾아 입력하는 데 건당 평균 30분이 걸리던 것을 5초 수준으로 줄였고, 오류도 98% 줄였다.

구조화 이후에는 업무 기준과 기존 정보에 대조해 정상과 예외를 구분하고, 정상 건은 다음 절차로 자동 연결해야 한다.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예외와 근거만 담당자에게 제시해야 민원 자동 분류와 제출서류 검증, 행정 비서 같은 AI 행정도 신뢰성 있게 작동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제안요청서와 구축·검수 기준에서 문서 구조화의 위치를 명확히 하고, 공통 데이터 스키마와 원문 근거 추적 방식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성과지표도 OCR 정확도나 처리 건수에 머물지 말고, 공무원이 값을 다시 입력하지 않아도 되는 비율, 정상 건이 사람 개입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비율을 측정해야 한다.

데이터 먹통은 행정을 과거에 묶어둔다. 7000억원 사업의 성패는 몇 건을 옮겼는지가 아니라, 공무원이 더 이상 몇 건의 문서를 다시 열어보지 않아도 되는지에 달려 있다.

김지현 한국딥러닝 대표 koreadeep@koreadee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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