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수소는 ‘생산’서 ‘수요’로…기후테크·AI 기업 제주 유치
히트펌프·V2G 맞춤형 전기요금 추진…삼성전자 제주서 실거주 실증

제주도가 풍부한 해상풍력을 국가 전력망과 연결해 장기적으로 수도권까지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그치지 않고 주민 이익공유와 그린수소 수요 창출, 분산에너지·기후테크 산업 육성, 전기요금 개편을 한데 묶어 '2035 탄소중립'을 산업 전략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위성곤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15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입기자단과 만나 “제주는 해상풍력을 하기 매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며 “좋은 자원을 국가계통에 접속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위 지사는 제주 해상풍력 전력을 초고압직류송전(HVDC)망을 통해 육지와 연결하는 장기 구상도 제시했다. 그는 향후 수도권의 전력수요 증가와 난방 등 열에너지의 전기화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제주에서 해상풍력을 만들어 HVDC로 수도권까지 연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 5~10년을 보면 그런 상상을 못 하지만 30년 뒤를 보면 그런 상상을 해야 하고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검토를 주문했다.
◇“풍력 이익, 주민에게 직접”…이익공유 방식도 손질
해상풍력 확대 과정에서는 주민이 사업 수익을 직접 공유하는 방식을 강화한다.
위 지사는 한림해상풍력을 사례로 들었다. 약 6300억원이 투입된 100㎿ 규모 한림해상풍력 사업에 수원리·한수리·귀덕2리 등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약 300억원을 투자했고, 이를 통해 마을에 수익이 돌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위 지사는 기존처럼 사업 이익 일부를 공공기금으로 받아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방식만으로는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도민이 직접 참여하는 펀드와 공공 이익 지분을 함께 구성해 발전사업의 성과를 주민과 취약계층까지 공유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돈 없는 사람도 참여하게 하는 구조”라며 “취약계층도 에너지 사업에 참여해 실질적으로 수익을 얻는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모두가 행복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이미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에너지전환 모델로 추진하고 있다. 한림해상풍력의 주민 이익공유와 ESS·재생에너지 입찰제도 등 제주에서 검증한 제도를 전국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그린수소 정책도 전환…“생산시설 있는데 소비처 없다”
그린수소 정책은 '생산 확대'에서 '수요 확보'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위 지사는 “제주도가 수소와 관련해 많은 실증설비와 생산시설을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수소를 소비할 소비체가 사실상 없다”고 진단했다. 특히 기존에 추진하던 수소트램은 경제성 문제를 이유로 전기트램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소 단가가 상업화시킬 정도로 내려오지 않았다”며 “그린수소를 생산해 트램을 운영해서는 실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때 버려지는 전력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제주도는 재생에너지가 많이 생산되는 시간대에 잉여전력을 수소로 전환해 그린수소의 경제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행원 3.3㎿ 그린수소 생산시설에서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총 359억원을 투입해 실시간 전력시장과 연계한 수전해 시스템 실증도 진행한다.

◇“10원·20원 차이로 행동 못 바꿔”…전기요금 대수술 예고
분산에너지 시대에 맞춰 제주형 전기요금 체계를 만드는 작업도 추진한다.
위 지사는 현행 전기요금 체계가 히트펌프나 양방향 충·방전(V2G)과 같은 새로운 전력 수요자원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히트펌프요금제, 분산에너지요금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실질적으로 ㎾h당 10원, 20원 차이가 나는 구조를 가지고는 유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폭적으로 가격 차이를 만들어 실제 행동 참여가 어느 정도 될 것인지 연구를 통해 요금제도를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가 넘치는 시간에는 전기를 싸게 공급해 히트펌프·전기차 충전 등 새로운 수요를 유도하고 전력 부족 시간에는 소비를 줄이는 방향이다. 제주도는 정부 연구용역 등을 통해 히트펌프 요금제와 분산에너지 요금제 도입 방안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이 같은 정책의 실증도 제주에서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제주시 도남동 단독주택에 실거주형 '히트펌프 필드 테스트 랩'을 구축하고 'EHS 올인원'의 냉난방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검증하고 있다. EHS 올인원은 실외기 한 대로 냉방·난방·급탕을 모두 제공하는 주거용 히트펌프 솔루션이다.
특히 냉방 중 발생하는 폐열을 온수 생산에 다시 활용하는 열회수 기술을 적용했다. 삼성전자는 실제 거주 환경에서 장기간 운전하며 성능과 에너지 비용, 사용 편의성을 검증해 국내 환경에 최적화된 히트펌프 운전 데이터를 확보한다.
제주도는 올해 공기열 히트펌프 2460가구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총사업비 344억원 가운데 국비 138억원, 도비 103억원, 자부담 103억원이 투입된다. 위 지사는 전기차와 히트펌프를 선도적으로 보급할수록 지방재정 부담이 커진다며 중앙정부에 국비 지원 확대도 요구했다.

◇기후테크·AI 기업 끌어들여 '실증의 섬' 넘어 산업화
위 지사가 그리는 최종 목표는 제주를 단순한 에너지 기술 실증지역에서 기후산업 거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제주도는 기후테크 기업과 AI 기반 실증이 필요한 기업을 집중 유치하고 새로운 산업단지 조성도 추진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와 배터리를 결합한 주파수 안정화, 계통운영 기술 등 제주에서 필요한 기술을 기업의 사업 기회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자발적 탄소시장도 새로운 산업 축으로 키운다. 도민의 기후행동을 탄소크레딧으로 전환하고 이를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기업과 주민이 참여하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위 지사는 “제주는 자발적 탄소시장에 정책을 좀 더 집중할 생각”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앞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한국마사회와 한국공항공사,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을 공공기관 이전 우선 유치 대상으로 선정했다. 특히 에기평에 대해서는 분산에너지와 전력시장, 재생에너지 등 향후 국내 에너지 시스템을 제주에서 먼저 실증하고 있다는 점을 유치 논리로 내세웠다.
위 지사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맞이할 10년의 모습을 제주가 실증하고 실험하고 있다”며 “실증하는 데 가장 최적의 입지를 갖고 있어 관련 기관 이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기후부와 2035년 탄소중립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별도 프로젝트도 협의하고 있다. 위 지사는 “조만간 기후부 장관과 관련된 계획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