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하스피탈 인사이트]〈2〉AI 네이티브의 조건, 왜 클라우드가 먼저일까?

이기혁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이지케어텍 사업총괄 겸임)
이기혁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이지케어텍 사업총괄 겸임)

최근 글로벌 헬스케어 IT 시장에서는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헬스케어 IT 평가기관인 KLAS가 발표한 '2026년 미국 급성기 병원 전자건강기록(EHR)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EHR 도입·교체가 결정된 병원 수는 전년 대비 40% 감소했다. 대규모 EHR 도입이나 교체에 대한 의사결정은 신중해진 반면, 많은 의료기관은 보다 빠른 재무적·운영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AI와 운영 효율화 기술로 투자 우선순위를 옮기고 있다.

AI가 더 이상 의료정보시스템 주변을 맴도는 부가 기능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AI는 헬스케어 IT의 핵심 투자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국내외 의료정보 업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화두 역시 'AI 네이티브'(AI Native)다.

새롭게 등장하는 의료정보시스템의 비전에서도 AI는 빠지기 어려운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진료기록을 요약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며, 임상의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기능이 대표적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AI가 별도의 기능으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의료진의 업무 흐름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AI 기능을 많이 탑재하면 그것으로 AI 네이티브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AI 네이티브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은 어떤 AI를 가지고 있느냐보다 시스템이 어디에서 출발했느냐에 있다. 기존 시스템 위에 필요한 AI 기능을 하나씩 덧붙이는 것과 시스템 자체를 처음부터 AI 활용을 전제로 설계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가 필요한 AI 솔루션을 연결하는 '플러그인'에 가깝다면, 후자는 시스템 전체의 '아키텍처(설계 구조)'에 관한 문제다.

AI 네이티브 의료정보시스템에서 AI는 별도의 메뉴 하나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진료기록을 요약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며, 임상의의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업무 흐름 속에 통합돼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오늘 가장 뛰어난 AI도 몇 년 뒤에는 낡은 기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은 매우 빠르게 변한다

AI 기술의 변화 속도는 매우 빠르다. 새로운 모델과 서비스가 계속 등장하고, 기존 모델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

결국 AI 네이티브의 진짜 경쟁력은 특정 시점에 가장 좋은 AI를 탑재하는 데 있지 않다. 앞으로 등장할 더 나은 AI를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고, 교체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가에 있다.

바로 여기서 의료정보시스템의 구조가 중요해진다.

병원별 구축형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100개의 병원이 같은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버전과 운영 환경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기능 하나를 개발해도 병원별로 검증하고 수정하고 배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AI는 수 주에서 수개월 단위로 변화하는데 의료정보시스템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잘못하면 가장 혁신적인 AI를 탑재하며 출발한 시스템이 몇 년 뒤에는 오히려 가장 낡은 AI를 사용하게 되는 역설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응하는 중요한 기반이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MSA)와 CI·CD 기반의 지속적 통합·배포 체계다. 기능을 독립적으로 변경하고 배포할 수 있는 서비스 단위로 구성하고 개발·검증·배포 과정을 자동화하면 전체 시스템을 한꺼번에 멈추거나 대규모로 수정하지 않고도 필요한 기능을 보다 신속하게 개선할 수 있다. 검증된 새로운 AI 기능을 여러 병원에 빠르고 일관되게 확산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진다.

◇AI가 많아질수록 '연결' 고려해야

AI가 많아질수록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바로 연결이다.

병원마다 데이터 구조와 시스템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수많은 AI 솔루션을 각각 일대일로 연결한다고 생각해 보자. 병원 수를 N, AI 솔루션 수를 M이라고 한다면 연결의 복잡성은 N×M으로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AI가 몇 개 없을 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의료정보시스템 안에서 수십 개의 AI가 동시에 작동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통 데이터 모델과 표준화된 개방형 API 계층을 갖추면 이러한 구조를 크게 단순화할 수 있다. 병원과 AI를 일일이 직접 연결하는 대신 각각이 공통 플랫폼의 정해진 규격을 통해 연결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N×M으로 증가할 수 있는 복잡도를 N+M에 가까운 구조로 줄일 수 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AI 하나를 어렵게 연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AI가 등장할 때마다 레고 블록처럼 유연하게 연결할 수 있는 구조다.

◇컴퓨팅 자원 활용도 고려해야

AI가 늘어나면 컴퓨팅 자원의 문제도 함께 커진다.

AI 추론에 필요한 연산 자원은 일정하지 않다. 외래 진료가 몰리는 시간과 한산한 시간의 차이가 크고, 특정 검사나 여러 AI 서비스가 동시에 작동하는 순간에는 필요한 자원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각 병원이 미래의 최대 수요를 예상해 고가의 GPU와 서버를 항상 확보해 두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클라우드 네이티브 환경에서는 애플리케이션을 컨테이너 기반으로 구성하고 쿠버네티스와 같은 오케스트레이션 및 오토 스케일링 체계를 활용해 필요한 연산 자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부하가 증가하면 필요한 자원을 확장하고, 수요가 줄면 다시 축소하는 방식이다.

AI 활용이 커질수록 이러한 탄력성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AI 성능 저하도 대비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AI는 한번 배포했다고 끝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 환자의 특성이나 질병 양상, 진료 패턴, 데이터 환경이 변하면 처음 개발 당시와 달리 AI의 성능이 저하될 수 있다. 이른바 '모델 드리프트(Model Drift)'다.

AI 모델이 몇 개라면 각각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병원에서 수십 개의 AI가 동시에 사용되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각 모델의 상태와 성능을 병원별로 개별 모니터링하고 재검증하는 방식은 점점 큰 운영 부담이 된다.

클라우드 네이티브 환경의 통합 관측·모니터링 체계를 MLOps(Machine Learning Operations)와 연계하면 모델의 성능 변화와 운영 상태를 보다 체계적으로 추적하고, 검증된 새로운 모델을 여러 기관에 일관된 방식으로 배포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클라우드 네이티브'가 필요한 이유

결국 AI 네이티브의 본질은 단순한 'AI 탑재'가 아니다. AI가 계속 바뀌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시스템도 함께 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클라우드 네이티브가 중요해진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클라우드가 환자 데이터를 반드시 외부의 퍼블릭 클라우드로 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의료 데이터의 주권과 개인정보 보호, 기관별 정책을 고려해 병원 내부의 프라이빗 클라우드나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형태로 구현할 수도 있다.

기존의 구축형 환경에서도 AI를 업무 흐름에 통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AI의 수와 변화 속도가 커질수록 이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구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아무리 뛰어난 AI가 있어도 새로운 모델을 연결하거나 교체할 때마다 대규모 개발과 병원별 재설치가 반복된다면 AI 기능 몇 개를 탑재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AI 네이티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다가오는 AI 시대, 의료정보시스템의 진정한 경쟁력은 '현재 어떤 AI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쏟아질 혁신적인 AI를 얼마나 유연하게 수용해 진료 흐름 속에 안정적으로 통합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규모 있고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적 기반이 바로 클라우드 네이티브 아키텍처다.

이것이 우리가 AI 네이티브를 논할 때 그 아래에서 이를 떠받칠 클라우드 네이티브의 기술 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이기혁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이지케어텍 사업총괄 겸임 strategy@ezcaretech.com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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