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사용후 배터리 순환경제 허브' 도약 위한 공급망 전략

사단법인 한국바젤포럼 이승희 대표(경기대 명예교수)
사단법인 한국바젤포럼 이승희 대표(경기대 명예교수)

지난 9월, (사)한국바젤포럼에서는 '사용후 전기차 배터리 순환경제 워크숍'을 개최했다. 함께 참여한 아세안 경제연구원(Economic Research Institute for ASEAN and East Asia:ERIA)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입법예고한 '사용후 배터리의 관리 및 산업육성에 관한 법률 (사용후 배터리 법)'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고, 사용후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과 폐쇄루프(Closed-Loop) 구축에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조차 사용후 전기차 배터리를 단순 폐기물이 아닌 '핵심 전략 물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국제적으로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중국은 2018년 신에너지차 배터리 재활용 의무 규정을 발효해 배터리 전주기 정보를 관리하는 국가 추적 플랫폼에 의해 자국 내 공급망(Supply-Chain)을 구축했다. 미국은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DPA)에 의해 블랙매스(Black Mass)의 해외 수출을 올해부터 1년간 사실상 금지하는 임시 규칙을 시행했다. 다만, 해외에서 정제한 뒤 회수된 핵심광물을 다시 미국으로 재반입하는 경우에는 허용한다고 특정 조건에 한해 예외를 두었다. 미국의 블랙매스는 연간 6만톤 정도 발생하지만, 약 3만5000톤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연합(EU) 역시 폐기물 선적규정(Waste Shipment Regulation:WSR)에 의해 최근 일정 성분 기준을 충족하면 자원으로 인정해 수입을 개방하고 핵심 자원의 역외 유출은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용후 전기차 배터리 발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국내 발생량만으로는 지속적으로 재활용 시설을 가동하기 어렵다. 이에 '사용후 배터리 법'의 제정은 핵심 광물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재생 원료 생산을 촉진하겠다는 정책을 포함하고 있어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 같이 특별한 규정이 있을 경우, 회수된 물질을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 조건이 있는데 이러한 규정이나 조건을 반영해 사용후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국내 재활용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폐기물관리법 하위 법령 개정(안)은 재활용 공정을 거쳐 회수된 원료물질을 '국내 제품 제조 용도'로만 한정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미국의 수출 예외 조건(정제 후 핵심광물의 미국 재반입)에 부합하지 않아 미국의 잉여 블랙매스를 사실상 수입하지 못하게 해 국내 배터리 재활용 활성화에 필요한 공급망 구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원료물질을 국내 사용 용도를 우선시하는 것은 타당하나 조건부로 재활용을 목적으로 수입된 원료물질에 대해서는 수입국 규정과 수입 조건 부합하도록 유연한 규정을 마련해 국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진정한 자원 안보는 재활용 시장을 국내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뛰어난 정제 및 가공 기술을 이용해 여러 나라의 폐자원을 고순도 핵심광물로 회수할 수 있도록 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내 무역 관행과 환경 규제를 글로벌 기준과 지침에 부합하도록 조정하고, 미국 및 유럽의 잉여 자원을 수입·재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지금 한국은 아시아 신흥국의 사용후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하도록 하는 핵심 기지 역할을 하기 위해 정부·학계·산업계 간 긴밀히 협력해 '아시아 배터리 순환경제 허브'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희 사단법인 한국바젤포럼 대표·경기대 명예교수 swrhee@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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