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OECD 자살률 1위라는 비극은 20년 가깝게 이어지고 있다. 더 뼈아픈 대목은 10~20대 젊은 층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신체적 건강수명은 꾸준히 늘었지만, 마음의 건강 영역에서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질병과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생명안전 복지국가'를 미래상으로 제시한다면, 정신건강 체계의 확립 없이는 그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현행 지원체계가 '스스로 상태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전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설문과 상담은 본인이 상태를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비로소 시작된다. 하지만 아동·청소년에게 이 세 단계는 모두 까다로운 장벽이다.
감정을 정확히 언어화하기 힘들고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침묵하는 사이, 위기는 성인이 알아채기 전에 빠르게 다가온다. 자기보고(Self-report)와 사후 대응 위주의 현 시스템에 치명적인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이유다.
바로 이 지점에서 뇌과학의 역할이 요구된다. 정서와 충동을 조절하는 뇌 회로의 변화는 주관적 증상 호소보다 먼저 발현된다. 다만 핵심은 단 한 번의 검사 점수가 아니다.
뇌 기능은 단층적 절대값이 아니라 '개인의 발달 궤적에서 벗어난 이탈'로 평가해야 한다. 단면적 1회성 검사는 본래 기저 기능이 높았던 소아-청소년의 초기 기능 저하를 놓치기 십상이다.
문제는 투자 및 정책의 무게중심이다. 그동안 국내 뇌 연구 투자는 치매 등 노년기 질환에 편중돼 왔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고려하면 타당한 선택이었으나, 개인 궤적 표준은 장기 종단 데이터 없이는 구축할 수 없다.
이미 영국은 대규모 종단 뇌영상 코호트를, 미국은 '전 생애 커넥톰(Connectome) 사업'을 통해 데이터 자산을 국가 차원에서 축적해 왔다. 반면 한국은 소아와 노년 코호트를 파편적으로 운영했을 뿐, 생애 전주기를 관통하는 통합 표준 데이터가 부재하다.
데이터 착수 시점 자체가 곧 대체 불가능한 진입장벽이 되는 분야인 만큼, 생애 초반부(아동-청소년기)에 대한 연구개발(R&D) 및 인프라 투자가 시급하다. 이에 정부에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한국인 생애전주기 뇌 표준 지도'의 국가 사업화다. 기존 소아-성인-노년 코호트를 표준화해 단일 축으로 연계해야 한다. 이러한 인프라는 3년 단위의 단기 경쟁형 과제로는 지속될 수 없다.
'국가 연구 인프라'로 지정해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축적된 표준 데이터는 연구-산업계에 대폭 개방해야 한다. 아시아 인구 대표 표준을 선점하면 향후 국제 표준 논의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둘째, 뇌영상 및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활용한 선제적 바이오마커 개발이다. 언어적 표현에 한계가 있는 아동-청소년을 위해 뇌 신호 기반의 정량적 정서-충동 조절 지표를 확보하고, 이를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와 결합해 비침습적-일상적 스크리닝이 가능한 기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연구 데이터의 현장 적용을 위한 교육-보건 연계 실증 체계 구축이다. 뇌과학 연구 성과가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도록 학교,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의료기관을 잇는 디지털 정신건강 모니터링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아이가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 전 위험 신호를 먼저 감지하고 개입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정민영 한국뇌연구원 융합연구부 부장 minyoung@kb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