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보존 신약개발연구소가 질병 원인 표적을 하나만 겨누는 통상적 신약 설계에서 벗어나 '다중 타깃' 전략으로 자체 파이프라인을 넓히고 있다. 이 전략으로 임상 단계 후보물질 3종과 비임상 단계 5종을 확보해 후속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대규 비보존 신약개발연구소 부소장은 “대형 제약사는 단일 표적에 활성이 가장 좋은 화합물을 만들지만 실험실 약효와 실제 임상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며 “질병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만큼, 중심 표적 하나에 연관된 기전의 표적을 묶어 동시에 조절하면 임상 효능이 더 높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연구소가 다중 타깃 전략으로 일군 대표적인 성과는 국산 38호 신약인 비마약성 진통제 '어나프라주'다. 이달 출시 1년을 맞은 어나프라주는 지난 9월 말 기준 4만명 이상의 환자에게 투약됐다. 최 부소장은 “임상 현장에서 뚜렷한 독성이 발견되지 않아 안전성을 입증한 상황”이라며 “연내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임상 3상 진입을 위한 미팅을 추진 중이며 임상 프로토콜을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나프라주와 같은 신약 설계를 뒷받침하는 핵심 동력은 속도다. 연구소는 빠른 의사결정 구조와 자체 합성실과 약효 평가 설비를 모두 갖춰 화합물 1개 평가에 걸리는 시간을 이틀로 단축했다.
최 부소장은 “우리가 이틀이면 끝낼 평가가 대형 제약사에서는 2주 정도 걸리고, 합성실이 없는 바이오 벤처도 외부 기관에 위탁하느라 2주 가량 기다려야 한다”며 “같은 기간에 더 많은 화합물과 데이터를 확보해 후보물질 도출 속도를 높인 것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후속 파이프라인 임상도 본궤도에 올랐다. 경구용 후보물질 'VVZ-2471'은 최근 국내 대상포진 후 신경통 임상 2상에서 고용량군의 통증 개선 비율이 위약군보다 높게 나타났다. 최 부소장은 “초기 탐색적 임상 결과 충분한 개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물질은 약물중독 치료제로도 영역을 넓혀 현재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사용장애(OUD) 환자 대상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퇴행성 뇌질환 후보물질 'VVZ-3416'은 세 가지 표적에 동시 작용하도록 설계됐다. 알츠하이머병을 첫 적응증으로 겨냥해 현재 비임상 독성시험 마무리 단계와 원료·완제의약품 생산을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이 목표다.
연구 범위는 통증에서 정신질환·심혈관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조현병 후보물질(VVZ-N3)은 기존 2세대 항정신병 치료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제형 개발이 가능하도록 약효와 물성을 끌어올렸다. 심혈관 질환 후보물질(VVZ-N5)은 기존 항혈소판제를 대체할 새로운 표적을 발굴했다. 최 부소장은 “3~4년 전부터 다중 타깃 설계를 말초신경계 등 비중추신경계 영역으로 넓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약 개발 화두인 인공지능(AI) 활용에 대해서는 기대와 한계를 동시에 짚었다. 최 부소장은 “AI 도입으로 개발 속도가 빨라져 수년 내 임상에서 성공하는 AI 신약이 나올 것”이라며 “다만 AI가 비임상 후보물질 도출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독성 예측은 한계가 있기에 AI가 제안한 구조를 실제로 합성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결국 의약화학자 몫”이라고 설명했다.
최 부소장은 “향후 5년은 차별화한 기전과 경쟁력을 갖춘 파이프라인을 실제 개발 성과로 연결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신약 개발은 90% 실패하지만, 실패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자세를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중권 기자 lim918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