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우려와 달리, 국내 3602만여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백신 접종 이후 암 발생 추세의 유의미한 변화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연구는 관찰 자료를 활용한 분석으로, 백신 접종과 암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완전히 규명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29일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SMCK) 온라인 브리핑에서 전국 단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50개월간 암 발생 추세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와 코로나19 예방접종 기록을 연계해 1955~2004년 출생자 3602만4394명의 암 발생 추이를 분석했다. 국제학술지 '바이오마커 리서치(Biomarker Research)'에 게재된 이번 연구는 2011년 2월부터 2025년 9월까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백신 1차 접종률이 50%에 도달한 2021년 8월을 전후해 암 발생 추세가 달라졌는지 살펴봤다.
분석 결과 13개 암 분류 모두에서 접종 이후 통계적으로 유의한 발생 추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위암과 대장암, 폐암, 전립선암을 별도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뚜렷한 변화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 대상자의 89.3%가 코로나19 백신을 한 차례 이상 접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코로나19 유행 당시 암 검진 감소와 이후 의료서비스 정상화가 암 발생 통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고려했다. 정 교수는 관련 요인을 보정한 분석에서도 암 발생의 뚜렷한 증가 추세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지난해 발표된 선행 연구와 대조된다. 당시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등이 서울 시민의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해 백신 접종자의 접종 후 1년 이내 주요 암 발생 위험이 미접종자보다 높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짧은 추적 기간과 연구 설계 등을 고려할 때 해당 결과만으로 백신 접종이 암 발생을 유발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 교수는 암이 발생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암이 수년간의 잠복기를 거치는 만큼, 접종 후 1년 정도의 관찰만으로 백신과 암 발생의 연관성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코로나19 백신과 암 발생을 둘러싼 우려가 제기돼 왔지만, 연구진은 암 발생 건수의 증가와 개인별 암 발생 위험의 상승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령화에 따라 암 환자 수가 늘어날 수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특정 백신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 역시 관찰 연구라는 한계를 갖는다. 대규모 인구 자료를 활용해 접종 전후의 추세를 비교했지만, 이러한 분석만으로 백신 접종과 암 발생 사이의 모든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앞선 연구 발표 이후 일부 고위험군에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 의료 현장에서 설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연구가 백신과 암의 모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결과라기보다는, 백신 접종으로 암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암 발생이 급증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전국 단위의 통계적 추세 변화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백신 안전성에 관한 판단에서는 연구 규모뿐 아니라 추적 기간과 분석 방법, 인과관계 평가의 한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