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병관리청이 2030년을 목표로 국가 감염병 임상연구를 총괄할 전담 기관을 신설한다. 상업성이 낮아 민간 투자가 더딘 백신·치료제 임상을 국가가 직접 기획·수행해 감염병 등 위기 상황에 개발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1일 정부기관에 따르면 질병청은 국립감염병연구소 기능 확대 일환으로 가칭 '감염병임상연구·분석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신센터 건립에는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유족이 기부한 '대한민국 감염병 극복 지원사업' 재원 가운데 국립감염병연구소 인프라 확충에 배정된 1000억원을 투입한다.
신센터는 연구자와 병원, 기업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는다. 기초·전임상 연구 성과가 임상시험과 정책 근거로 이어지도록 임상 기획부터 수행, 데이터 구축·분석까지 전 주기를 통합 수행한다.
주요 기능은 △공공임상 총괄·기획 △임상시료 시험·분석 △임상데이터 표준화·활용 △감염병병원 연계·협력 △기초·임상 중개연구 활성화 △전문인력 양성 등 6개 축이다.
공공 임상시험 중장기 로드맵을 세워 실무를 총괄하고, 생물안전 3등급(BL3) 등 특수시설과 표준물질·표준시험법(SOP)을 활용해 임상시료를 분석하며 위기 시 대량 분석 수요에 대응한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어려운 공익적 임상연구도 직접 수행한다. 감염병 후유증과 백신 이상반응, 대규모 코호트 연구가 대상이다.
센터가 맡을 기능 가운데 일부는 이미 사업 단위로 가동 중이다. 코로나19 유행 때는 보건복지부와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국가감염병임상시험센터 등 다기관 컨소시엄을 꾸려 대응했지만, 유행이 끝난 뒤 지속 운영하지는 못했다. 국립감염병연구소는 올해부터 감염병 임상시험 컨소시엄과 지원체계 운영 과제를 추진해 다기관 협력망을 상설 체계로 전환하고 있다.

이 협력망은 평시에는 결핵이나 항생제 내성균 같은 미해결 감염병을 연구하다가,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면 곧바로 백신·치료제 임상으로 전환하는 구조다. 센터는 이 협력망을 포함해 국가 감염병 임상연구를 총괄하는 상위 기능을 맡게 된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신센터를 통해 정부 주도의 일원화한 임상연구 체계(연구자-병원-기업-제도)를 갖춤과 동시에 국민 보건안보 제고 효과 등도 기대된다”며 “다만 센터 건립지와 규모 및 시설 구성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신센터 건립은 코로나19 당시 드러난 국내 임상 환경 한계 극복을 위해 추진됐다. 당시 미국 모더나와 화이자·독일 바이오엔텍은 1년 만에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을 완료했다. 미국은 정부 개발 지원부터 임상·인허가까지 8개월 만에 마쳤다.
반면 국내는 백신 연구개발 역량과 신속한 임상연구 체계·인프라가 부족해 국산 백신이 임상 1상에 진입해 허가받기까지 1년 6개월 걸렸다. 고위험 병원체를 다룰 수 있는 생물안전 3등급 시설을 갖춘 임상시험 검체분석기관은 국립보건연구원과 국제백신연구소 두 곳뿐이었다. 병원마다 임상 심사를 따로 받아야 해 착수가 늦어졌다.
임중권 기자 lim918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