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술 발전사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연 거대한 혁신은 늘 놀이와 학습의 경계를 넘나드는 친숙한 경험을 통해 대중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개인용 컴퓨터(PC)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 대중은 조악한 그래픽의 게임과 간단한 코딩 학습을 즐기며 디지털 시대를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스마트폰 역시 앱 생태계라는 흥미로운 놀이터를 거쳐 인류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기술 혁신은 거창한 산업적 선언보다 대중이 직접 만지고, 경험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진정한 대중화의 동력을 얻는다.
최근 인공지능(AI)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변화 역시 이러한 역사적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간 화면 속 텍스트 문답식으로만 체감했던 AI의 효용을, 이제 집과 학교, 일터에서 직접 움직이는 '피지컬AI 로봇'으로 체험하는 시대가 열렸다.
프랑스 폴렌 로보틱스와 국내 로보티즈의 협력 사례에서 보듯, 399달러(약 53만원) 수준의 소형 이족보행 로봇 '마이크로덕(Microduck)'을 비롯해 수십만원대 중저가 로봇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며칠 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프레젠테이션에서 직접 시연하며 화제를 모은 마이크로덕을 50만원대 초반 가격으로 직접 학습시키고 동작시켜 볼 수 있게 된 점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이는 단순히 로봇 가격이 낮아졌음을 넘어, AI와 로봇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가 반드시 수천억 파라미터 기반의 거대한 서버에만 머물 필요가 없으며, 로봇 역시 수십,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육중한 금속체일 필요가 없음을 대중이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고, 흥미로우며, 접근하기 쉬운 단말에서 출발한 피지컬AI의 경험은 미래 기술 진화의 핵심인 '사용자 경험(UX) 데이터'로 고스란히 축적된다. 개발자가 가상 환경에서 강화학습을 거쳐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일반화될수록 피지컬AI 기술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물론 400~700달러(약 50만~9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 모든 이들에게 저렴한 액수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가격에 청소년과 학생, 초보 연구자들이 기술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직접 피지컬AI 학습에 몰입할 수 있다면, 그 학습 가치와 저변 확대 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기술의 진짜 힘은 대중화에서 나온다. 부담 없는 가격에 똑똑한 소형 로봇이 이끄는 피지컬AI 대중화의 물결이 우수한 IT 인프라와 제조업 기반을 갖춘 한국에서 어떻게 꽃피울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