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어 가르치는 AI, 세계를 향한 도전

박세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박세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뜨겁다. K팝과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는 이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어는 더 이상 특정 국가의 언어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인이 소통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새로운 연결의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인이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리하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 해답의 하나가 인공지능(AI)이다. 언어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학습자가 한국어 원어민과 자유롭게 대화할 기회는 많지 않다. AI가 언제든 대화할 수 있는 친구이자 선생님이 된다면 언어교육의 문턱은 크게 낮아질 것이다.

최근 필자의 연구진은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 외국인 학습자와 자유롭게 대화하면서도 정해진 학습 목표와 진도를 놓치지 않는 '한국어 AI 선생님'을 개발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AI가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GPT 기반 AI보다 실제 사용자 평가에서 우수한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외부 기관이 외국인 학습자와 전문가 등 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블라인드 평가에서 ETRI 기술의 적절 응답 비율은 93.8%로 나타났다. 비교 대상인 GPT-4o-mini의 91.0%, GPT-5.1의 90.9%를 모두 앞섰다. 대화 중 오류 비율도 ETRI는 18.6%로, GPT 기반 AI의 25.4%, 23.7%보다 낮았다. 학습자들은 10개 대화 상황 중 8개에서 ETRI 기술을 가장 선호했다.

물론 모든 성능에서 앞선 것은 아니다. 질문의 반복이나 표현의 다양성에서는 보완할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성과는 세계적인 범용 AI와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해 우리 기술의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의 경쟁력이 반드시 모델의 크기나 개발 규모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준다.

기술의 핵심은 '주제 유도형 자유대화'다. 학습자는 자유롭게 말하지만 AI는 학습 단계와 목표를 파악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끈다. 기존 범용 AI가 대화 자체에 강점이 있다면, ETRI 기술은 대화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함께 충족한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AI를 넘어 잘 가르치는 AI로 진화한 셈이다.

또 하나의 차별성은 자체 개발한 소형 AI와 범용 AI를 역할에 따라 활용하는 구조다. 교육에 특화된 자체 AI가 기본적인 대화를 담당하고, 필요한 경우 범용 AI를 활용한다. 이를 통해 응답의 일관성을 높이고 학습자 정보가 해외 서버로 전달되는 문제도 줄일 수 있다. 해외 거대 AI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우리 기술로 교육의 핵심 기능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성과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AI 시대 기술 경쟁력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거대한 모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특정 분야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해결하고, 사용자가 체감하는 가치를 얼마나 높이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어 교육처럼 우리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독자적인 AI 기술의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다.

이처럼 기술의 경쟁력은 일상의 삶에서 증명돼야 한다. 나아가 우리 기술이 세계인의 배움과 소통을 돕는다면 그 가치는 국경을 넘어 확장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어 AI 선생님은 말하기를 넘어 읽기와 쓰기까지 지원하고, 학습자의 수준과 이력에 맞춘 맞춤형 교육으로 발전할 것이다. 특히 별도의 입력장치 없이 말만 해도 소통할 수 있는 스마트 글래스와 결합해 교실과 화면의 경계를 허물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어를 배우는 세계인의 곁에 대한민국이 만든 AI 선생님이 함께하는 미래. 우리 기술로 언어의 장벽을 낮추고 배움의 기회를 넓히는 일, 그것이 AI·DX 혁신으로 이끄는 함께 사는 따뜻한 세상의 모습이다.

박세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sbahk@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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