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에도 지휘봉 잡았다…'암' 두번 이겨내고 무대 오른 여성 지휘자

정샤오잉. 사진=SCMP
정샤오잉. 사진=SCMP

중국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 꼽히는 정샤오잉(鄭小瑛)이 97세의 고령에도 공연과 후학 양성 등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 차례 암 투병과 정치적 격변기를 겪으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그의 인생이 주목받고 있다.

1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정샤오잉은 지난 8월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오페라 '카르멘' 중국어판 공연을 지휘했다.

1929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정샤오잉은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처음 접했다. 이후 베이징협화의학원에서 생물학과 의학을 공부했지만, 19세 때 새로운 삶을 찾아 해방구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의 만류를 피해 세 차례 탈출을 시도한 끝에 우한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예술 교육을 받으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동료들의 권유로 합주단에서 박자를 맞추는 역할을 맡았고, 이후 자연스럽게 지휘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휘자가 전문 직업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지휘자의 길에 들어선 것은 1955년이다. 소련 출신 전문가 레니 두마셰프가 중국 최초의 지휘 세미나를 개최했을 때 정샤오잉은 참가자로 선발됐다. 당시 수강생 가운데 여성은 그가 유일했다.

1956년 중앙음악학원 지휘과 설립 당시 초기 교수진으로 참여한 그는 1960년 러시아 유학을 떠났다. 이어 1962년 소련 모스크바 국립음악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를 지휘하며 국제 무대에 진출한 최초의 중국인 지휘자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78년 49세의 나이로 중국국가오페라극장 수석 지휘자에 임명되면서 다시 음악계의 중심에 섰다. '토스카', '카르멘', '라 트라비아타' 등 서양 오페라를 중국어로 제작하는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가 추진한 중국어판 오페라는 단순한 번역에 그치지 않았다. 원작의 줄거리와 인물의 감정, 음악적 특성을 살리면서 현지 관객이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토스카'의 경우 중국어 번역본 약 10종을 비교하고 이탈리아어 및 중국어 전문가들과 협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오페라 대중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1979년부터 공연 전 약 20분간 작품의 배경과 감상 방법을 관객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서양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취지였다.

건강 문제도 그의 활동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정샤오잉은 1997년과 2014년 두 차례 암 진단을 받았으며, 당시 치료를 병행하면서도 공연을 이어갔다.

현재도 하루 약 10시간을 음악 관련 업무에 할애하고 있다. 공연 연습은 물론 악보 수정과 번역, 학생 지도까지 직접 맡으며 현역 지휘자로서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특별한 성공담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휘자의 길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음악을 선택해 왔다는 설명이다.

정샤오잉은 자신의 음악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관객에 대한 책임을 꼽았다. 그는 “중요한 것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공연에서 최선을 다했다. 관객은 나를 단 한 번만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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