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수천장씩 쌓이는 시대다.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로 손쉽게 촬영할 수 있지만, 정작 다시 꺼내 보는 사진은 많지 않다. 사진을 쉽게 찍을수록 한 장을 남기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은 오히려 드물어졌다.
서울 청량리와 서촌에 이를 되돌아보게 하는 공간이 등장했다. 한국후지필름은 5년 만에 서울에 오프라인 매장 '사진상점F'를, 캐논코리아는 13년 만에 체험형 팝업 스토어 '캐논 사진 한방당'을 선보였다.
온라인 중심으로 소비자 접점이 이동했으나, 양 사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완성하는 경험을 내세웠다.

◇카메라로 찍고 인화하고 꾸민다…사진상점F
서울 동대문구 롯데몰 벨리타운 청량리 4층. 지난달 23일 문을 연 사진상점F에 들어서자 연녹색으로 꾸민 벽면을 따라 즉석 카메라 '인스탁스'와 디지털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제품을 진열한 매장과 달리 촬영 공간·사진 인화 기기·꾸미기용 소품 등을 모두 모았다.
매장에서는 후지필름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셀프 촬영을 할 수 있다. 여러 카메라를 손에 쥐고 비교하는 '터치 앤드 트라이' 공간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대신 카메라를 직접 고르고 구도를 잡는 과정 자체가 체험 일부다. 전문 사진 작가에게 가족·프로필 사진을 촬영하고 보정을 받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촬영 이후가 더 흥미롭다. 인스탁스 프린터를 활용하거나 스마트폰에 저장한 사진을 인화한 이후 포토티켓·포토카드·액자로 만들 수 있다. 네컷 사진 촬영과 사진 꾸미기용 액세서리도 준비됐다. 수많은 디지털 사진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고르고, 손에 잡히는 나만의 결과물로 남길 수 있다.

사진을 꾸미고 소장하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 공간도 눈길을 끈다. 어떤 사진을 골라 어떻게 남길지 고민하게 만드는 구성이다. 인화한 사진을 작은 액자에 넣거나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다는 점은 화면 속 이미지와 다른 매력이다. 스마트폰에서는 손가락으로 넘기고 지나칠 사진도 이곳에서는 직접 고르고 꾸미는 대상이 된다.
한국후지필름은 일부 네컷 사진 부스와 무인 인화·포토카드 키오스크를 24시간 운영한다. 사진관·스튜디오·스포츠 구장 등에서 쌓은 촬영·인화 서비스를 한 곳에 묶어 소비자 접점을 넓히려는 전략이다. 한국후지필름은 쇼핑몰을 중심으로 공간 특성에 맞춘 사진과 체험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다.

◇사진 취향 '진단'·렌즈 '처방'…캐논 사진 한방당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일까지 운영한 종로구 서촌 캐논 사진 한방당은 분위기가 다르다. 고풍스러운 나무 약장과 한방 진료를 연상시키는 소품 사이로 카메라와 렌즈가 놓여 있다. 캐논코리아는 촬영 취향을 '체질', 제품 특징을 '효능', 추천 카메라를 '처방'에 빗댔다.
입구에서 '문진표' 형태 리플렛을 받아 건물 곳곳을 돌며 미션을 수행하는 구성이다. 2층 '시력 검사'에서는 카메라 줌으로 멀리 있는 로고를 찾고, '순발력 검사'에서는 렌즈를 골라 제한 시간 안에 촬영하는 방식이다.
제품 설명서를 읽는 대신 초점거리와 렌즈 차이를 게임으로 익힐 수 있다. 각 미션을 마칠 때마다 리플렛에 도장을 찍는 구성도 재미를 더했다. 문진표를 손에 들고 층을 오르내리며 촬영 과제를 수행하는 동선은 일반적인 카메라 매장보다 체험형 놀이 공간에 가깝다. 제품 사양을 단순 비교하는 기존 방식과 다른 접근이다.

3층에 오르면 체험은 '사진 체질' 찾기로 이어진다. 작은 소품을 접사로 담는 '사물인', 인물 표정을 포착하는 '인상인', 움직이는 물체를 찍는 '찰나인' 공간이 마련됐다. 옥탑 '풍경인' 구역에서는 경복궁 영추문을 바라보며 광각·망원 렌즈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같은 장소도 무엇을 보고 어떤 렌즈를 쓰느냐에 따라 다른 사진이 된다.
마지막에는 촬영한 사진을 미니 포토 프린터 '셀피 CP1500'으로 인화하고 자신 취향에 맞는 촬영법과 제품을 적은 '처방전'을 받는다. 30~40분 체험 동선을 따라가면 카메라 사양보다 '무엇을 찍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먼저 남는다.

◇오프라인서 찾는 '사진 가치'
사진상점F는 촬영부터 보관까지 연결하는 상설 매장이고, 캐논 사진 한방당은 카메라 입문 장벽을 낮추는 한시적 팝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카메라를 구매하기 전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사진을 파일이 아닌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온라인에서 화소 수와 가격은 비교할 수 있어도, 카메라 조작감이나 렌즈에 따른 시야 차이·인화된 사진 질감까지 전달하기는 어렵다.
한국후지필름과 캐논코리아가 오랜만에 오프라인 공간을 선보인 것도 이같은 체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사진상점F는 일상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소장하는 문화를 확산하고, 캐논 사진 한방당은 전문 카메라가 낯선 소비자도 자신만의 촬영 취향을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제품 판매를 넘어 사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잠재 고객과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다.
이같은 경험은 카메라를 당장 구매하지 않더라도 사진을 취미로 즐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카메라 체험이 일상 속 촬영으로, 촬영한 사진을 인화하고 간직하는 습관으로 이어진다면 사진 생태계도 확대된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수없이 찍고 지우는 시대, 한 장을 위해 구도를 고민하고 인화해 간직하는 경험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