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창업 페스타]청년 한 명 없던 김제 시골마을의 반전…논바닥 잔치에 2000명 몰렸다

MBC PD 출신 최별 대표, 소멸위기 농촌에 새로운 상권 조성
청년 창업팀 10개·상점 37곳으로 확대…연매출 10억원 창출
농민은 논·농기계 내주고 상인은 할인 동참…주민이 만든 축제

청년이 단 한 명도 없던 전북 김제의 작은 농촌 마을에 변화가 시작됐다. 텅 빈 상가에는 카페와 공방, 양조장이 들어섰고, 청년 창업팀 10개가 자리를 잡았다.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무대를 만들고 관광객 2000여명과 함께 잔치를 벌였다. 한때 사람이 떠나던 마을이 이제는 청년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MBC PD 출신 최별 에프엘디스튜디오 대표가 있다. 7년 전 김제 죽산면에 정착한 그는 방송 콘텐츠 제작 경험을 살려 마을을 알리고, 이를 방문과 소비로 연결하는 지역재생 모델을 만들어냈다.

최 대표는 5일 제주에서 열린 '제1회 로컬창업 페스타 in 제주' 로컬상권 성과공유회에서 죽산면의 변화 과정을 소개했다. 김제 죽산면 상권은 국민투표로 선정한 우수 로컬상권 2위에 올랐다.

최 대표가 김제에 발을 들인 것은 MBC 재직 시절이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김제 평야 한가운데 폐가를 구입해 고쳤고, 농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농촌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 실험은 죽산면에 문을 연 작은 카페였다.

당시 직장인 신분으로 사업자등록을 할 수 없어 커피를 무료로 나눠줬다. 수익을 기대했던 카페는 뜻밖에도 마을을 알리는 공간이 됐다. 방송과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카페가 알려지면서 외지인들이 하나둘 죽산면을 찾아왔다.

김제 죽산면 상권 모습
김제 죽산면 상권 모습

죽산면은 한때 전주로 오가는 길목에 자리해 오일장이 열릴 만큼 번성했지만, 근처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유동인구가 줄고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면 전체 인구도 2000명 아래로 감소했다.

최 대표는 “7년 전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청년이 한 명도 없던 마을이었다”며 “지금은 청년 창업팀 10개, 약 30명의 청년이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21곳이던 상점은 자수공방과 카페, 양조장 등이 들어서면서 37곳으로 늘었다. 로컬브랜드 창출사업 1년 차에 집계한 청년 창업팀의 연매출만 1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최 대표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방송 콘텐츠 제작이 중단된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마을을 찾을 것인지, 외부 관심 없이도 상권이 지속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그가 찾은 해법은 콘텐츠와 축제, 지역 생산품 판매를 하나의 경제 구조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우선 마을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전달할 유튜브 채널 '논논마을 방송국'을 만들었다. 지역 농민이 생산한 쌀과 콩을 청년 창업자들의 가공·기획 역량과 연결하는 로컬브랜드 플랫폼 '오늘의 평야'도 구축했다. 김제시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옛 2층 새마을금고 건물을 마을 방송국과 라운지로 개조했다.

여기에 계절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축제를 더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초록빛과 황금빛 평야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찾아오지만, 겨울이면 발길이 끊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처음으로 개최한 '논바닥 마을잔치'. 올해는 11월 26일부터 4일간 규모를 더 확장해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개최한 '논바닥 마을잔치'. 올해는 11월 26일부터 4일간 규모를 더 확장해 개최할 예정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논바닥 마을잔치'다. 추수가 끝난 논에 볏짚을 둥글게 말아놓은 곤포 사일리지를 쌓아 무대를 만들고, 음악 공연과 지역 상점 할인행사를 결합했다.

흥미로운 점은 축제의 핵심 자원이 외부 업체가 아닌 마을 주민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농민들은 수확이 끝난 논을 빌려주고 볏짚과 농기계를 제공했다. 대형 곤포를 옮기고 무대를 만드는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다. 상인들은 축제 기간에 맞춰 상품 가격을 15% 할인하는 등 공동 판촉에 나섰다.

최 대표는 “MBC PD 시절부터 이런 무대를 구상했지만 전문 축제기획사를 데려와도 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며 “마을에 살면서 주민들을 설득하니 예산이 많지 않아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험적으로 개최한 첫 축제에서는 약 600평 규모의 논에 무대를 설치했다. 이틀 동안 2000여명이 찾아왔다. 인구 2000명도 되지 않는 면 지역에 이틀간 그에 맞먹는 방문객이 몰린 셈이다.

올해는 오는 26일 시작하는 축제를 3박 4일로 확대하고 캠핑존도 마련한다. 가수 10CM와 요조, 옥상달빛 등도 참여할 예정이다. 볏짚으로 만든 무대가 천연 차음벽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확인해 공연 공간도 넓혔다.

최 대표는 이러한 활동을 일회성 축제가 아닌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로 설명했다.

온라인 콘텐츠로 죽산면을 알리고 잠재 방문객을 확보하면, 이들이 마을잔치와 상점을 찾아 소비한다. 이후에도 '오늘의 평야'를 통해 지역 농산물과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이야기는 다시 콘텐츠가 돼 다음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방식이다.

그는 “콘텐츠로 잠재 고객을 만들고, 마을잔치로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게 한 뒤, 로컬브랜드를 통해 생산자와 상인에게 수익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며 “이 과정이 다시 새로운 콘텐츠가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마을 주민들의 태도까지 바꿨다. 외부인에게 쉽게 내놓지 않던 빈집을 청년들에게 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최 대표는 “빈집 문제는 소유주들이 집을 팔거나 내놓지 않는 데서 시작하는데, 주민들이 '너희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며 집을 내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 주민들이 제공한 빈집 2채를 확보했고, 김제시와 내년도 빈집 활용 시범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2027년 2월 오픈 예정인 죽산 스튜디오.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했다.
2027년 2월 오픈 예정인 죽산 스튜디오.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했다.

청년들의 정착을 위한 주거 인프라 확충도 추진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기초생활거점 조성사업을 통해 2030년까지 청년 임대주택 8채가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활동하는 청년 30여명 중 상당수가 주거 공간 부족으로 마을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청년들의 유입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최 대표에 따르면 내년까지 결혼을 앞둔 청년 커플이 세 쌍에 달한다.

죽산면 사례가 주목받는 것은 대규모 시설 투자나 유명 관광자원 없이도 지역 주민의 참여와 콘텐츠 기획만으로 상권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중기부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을 출발점으로 청년마을 조성사업, 농식품부의 주거 인프라 사업 등이 연결되면서 창업 지원이 정주 여건 개선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만 최 대표는 죽산면이 경주 황리단길처럼 대규모 관광상권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대신 작더라도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유지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에는 은퇴하고 돌아왔을 때 단골 가게가 있는 마을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도시의 빠른 일상 속에서도 나를 아는 마을, 내가 아는 마을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시도를 하나씩 이어가니 마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이런 시골 마을에서도 다양한 도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별 에프엘디스튜디오 대표가  5일 제주에서 열린 '제1회 로컬창업 페스타 in 제주' 로컬상권 성과공유회에서 죽산면의 성장 스토리를 설명하고 있다.
최별 에프엘디스튜디오 대표가 5일 제주에서 열린 '제1회 로컬창업 페스타 in 제주' 로컬상권 성과공유회에서 죽산면의 성장 스토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병권 중기부 제2차관은 이날 성과공유회에서 “로컬 창업가들이 앵커 점포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관련 점포와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상권 전체가 활성화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러한 우수 사례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해 더 큰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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