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문학적 AI 투자비 수익화 경계까지 겹쳐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미국 뉴욕증시가 하루 만에 급락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권력을 장악하면서 AI 산업 규제 강화와 데이터센터 투자 위축 우려가 확산한 탓이다. AI 관련 기업들의 막대한 설비투자가 예상보다 둔화할 수 있다는 경계감까지 겹치면서 미국 증시에서 약 3조2000억달러(약 4288조원)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5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장보다 1421.52포인트(5.52%) 급락한 2만4315.00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1833.06포인트(3.44%) 내린 5만1523.0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334.89포인트(4.36%) 하락한 7353.73에 각각 마감했다.
나스닥과 S&P500지수의 이날 낙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로 증시가 충격을 받았던 지난해 4월 이후 최대 수준이다. 나스닥지수는 지난달 기록한 사상 최고치에서 10% 넘게 하락하며 기술적 조정장에 진입했다.
하루 전만 해도 시장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에 주요 지수가 일제히 상승했지만, 민주당의 승리가 AI 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부각되면서 상승분을 하루 만에 반납했다.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은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 가능성이다. 민주당 당선인 가운데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과 첨단 AI 개발 속도 조절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의회에 진출하면서 관련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텍사스와 조지아 등 데이터센터 산업이 집중된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선거에서 성과를 거둔 점이 불안감을 키웠다.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되면 AI 반도체와 서버는 물론 전력설비, 냉각장치,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까지 위축될 수 있다. UBS는 건설 중단 등의 여파로 2028년 미국에서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 데이터센터 용량의 약 30%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천문학적인 AI 투자비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의문도 다시 불거졌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를 위해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차입을 늘리는 가운데 고금리 부담까지 이어지면서 투자 대비 수익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매도세는 AI 반도체주에 집중됐다. 엔비디아가 9.3% 급락했고 AMD는 17.3%, 마이크론은 17%, 브로드컴은 10.6% 떨어졌다. 퀄컴도 9.5% 하락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12% 넘게 폭락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AI 컴퓨팅 자원을 빌려주는 네오클라우드 업체와 데이터센터 운영사도 타격을 입었다. 데이터센터 전력설비 공급업체인 GE버노바도 7.5% 하락하는 등 AI 투자 위축 우려가 반도체에서 전력·산업재 분야로 번졌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도 각각 10.8%, 9.1% 떨어졌다. 머스크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을 지원하는 데 거액을 투입한 가운데 민주당의 승리가 두 회사에 대한 규제와 정치적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급락 과정에서 헤지펀드들이 위험 노출을 줄이기 위해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저가 매수에 나서던 투자자들마저 현금 확보에 나서면서 매도 압력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반면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면서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 4.90%에서 4.84%로 하락했다. 국제유가는 이란 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브렌트유가 3.9% 상승했다.
테드 파크힐 인클라인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시장은 AI의 약속에서 AI의 가격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AI가 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모든 AI 관련주의 현재 가격이 적정하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상당한 변동성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