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경쟁력과 탄소중립을 위한 K-GX(녹색전환)의 핵심 과제인 기업 '전기화'가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전기화를 추진 중인 기업은 10곳 중 3곳에 그쳤고, 추진 기업 절반 이상은 비용 부담을 호소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국 제조업체 307개사를 대상으로 '기업의 전기화 현황과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 전기화를 추진 중인 기업이 31.9%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추진 예정은 5.2%, 추진 계획이 없다는 응답은 62.9%였다.
전기화는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설비와 공정을 전기 기반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가스 보일러를 전기 히트펌프로, 제철소 고로를 전기로로 교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도 K-GX 핵심 과제로 전기화를 꼽고 '전기국가' 전환을 추진 중이다.
전기화 추진 기업의 56.8%가 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다소 크다'가 42.0%, '매우 크다'가 14.8%였다. 부담 요인(복수응답)은 높은 초기투자비(84.0%), 높은 운영비(56.2%), 정책 불확실성(18.5%) 순이었다. 설비 교체에 목돈이 들고, 전환 뒤에도 운영비가 늘어나는 이중 부담 구조다.
기업들은 전기화에 가장 필요한 정책(복수응답)으로 전력조달비용 부담을 줄이는 인센티브(66.1%)를 꼽았다. 요금·시장 제도 개선(61.9%), 에너지정책 예측 가능성 제고(45.0%)가 뒤를 이었다.
대한상의 의뢰로 '주요국의 전기화 지원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를 작성한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전기화를 가속하려면 기업의 전력조달비용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이 높으면 전기화 이후 운영비가 화석연료를 쓸 때보다 늘어 전환 유인이 약해진다는 설명이다.
주요국은 전기화·탈탄소 노력을 조건으로 기업의 전력조달비용을 덜어주고 있다. 독일은 녹색투자를 전제로 전기요금 차액을 보조한다. 일본은 에너지효율 요건을 충족한 기업에 재생에너지 부과금을 감면한다. 중국은 에너지효율이 높은 에너지집약기업을 요금 할증에서 제외한다. 미국 텍사스주 전력회사는 재생에너지 사용 기업에 낮은 요금을 적용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산업용 열을 전기로 전환하면 부과금에 상한을 두는 법안을 2027년 시행 목표로 추진 중이다.
조홍종 한국자원경제학회장(단국대 교수)은 “전력시장 요금제가 변화되고 있는 시기인 만큼 정책간 연계를 통해 전기화, 녹색투자의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시행 예정인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에 대해서는 응답 기업 91.8%가 비용 부담을 덜고 전기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다만, 비수도권 신·증설 투자 가능성은 '검토할 여지가 생길 것'이 49.8%로 가장 많았다. 투자 '증가'를 예상한 응답은 14.7%에 그쳤고, '거의 없음'도 35.5%였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기업의 전기화는 아직 초기 단계로, 지원체계를 어떻게 갖추느냐에 따라 확산 속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면서 “기업이 비용 부담 때문에 전기화를 망설이지 않도록 전력조달비용을 낮추는 인센티브와 예측 가능한 요금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