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참전에 판 커지는 벤처투자시장...VC-증권사-은행 모험자본 경쟁 본격화

금융지주회사가 일제히 벤처투자 시장으로 뛰어들면서 혁신성장 기업 육성을 위한 금융권의 모험자본 공급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 펀드 출자자에 머물렀던 은행·지주가 직접 투자 기업을 발굴하는 셈이다. 벤처투자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 증권사, 기존 벤처캐피털(VC) 등과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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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작년 신규 결성된 벤처투자펀드 규모는 8조289억원에 이른다.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6조4942억원으로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했던 실적에 비해 펀드 결성 규모는 68.6%, 투자 실적은 89.6% 큰 규모다.

정부 발표에 비해 실제 규모가 증가한 이유는 중기부 소관 창업투자조합과 벤처투자조합 외에도 신기술투자조합, 창업벤처PEF 등 전방위로 확대된 투자 방식이 처음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투자 규모 증가분 가운데 83.8%는 신기술투자조합 결성액이 차지했다.

지난해 설립한 하나벤처스를 비롯해 증권사 등 금융권에서는 신기술사업금융업 인가를 획득해 벤처투자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전업 신기술금융사는 지난해 기준 51개에 이르렀다. 전년 대비 9개사가 증가했다. 투자 규모 역시 1년 만에 1조6608억원에서 2조4932억원으로 50.1% 늘었다.

이처럼 신기술금융 투자 규모가 빠르게 증가한 것은 기존 VC뿐만 아니라 증권사, 은행 등 금융권의 벤처펀드 진입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그간 벤처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금융권에서 계열 VC 등을 통한 출자를 크게 확대했기 때문으로 벤처투자업계는 해석한다.

벤처펀드 기준으로 가장 많은 운용자산을 보유한 한국투자파트너스는 한국금융지주의 계열 VC다. 5월 기준으로 1조7494억원을 운용하고 있다. KB인베스트먼트는 9690억원 AUM을 기록해 두 번째로 많은 펀드를 운용한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투자파트너스와 KB인베스트먼트 모두 증권사와 은행 등과 연계된 만큼 안정적인 운용으로 정평이 나 있다”면서 “최근 벤처투자에 관심이 커진 만큼 다른 금융사에 출자금을 맡기기 보다는 직접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조직을 꾸리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이 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비은행 계열 증권사는 신기술금융 인가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벤처투자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중소형사 한양증권도 신기술금융업을 인가를 받았다. 상장 증권 발행과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증권사의 특성상 비상장기업 지분 투자를 위해 별도 조직을 꾸리는 것보다는 사모펀드(PE) 등과 연계를 통해 내부에서 벤처투자를 동시에 실시하기 위해서다.

반면에 금융지주 차원에서는 별도 자회사를 설립하는 분위기다. 한국투자증권-한국투자파트너스, 미래에셋대우-미래에셋캐피탈-미래에셋벤처투자, KB은행-KB증권-KB인베스트먼트 등과 같이 비상장 기업에 대한 기업금융까지도 지주회사 차원에서 한 번에 지원하기 위해서다.

실제 업무도 밀접하다. 초기투자부터 기업공개(IPO), 성장에 필요한 대출 등 자금 조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계열사 간 상호 연계가 가능하다. 최근 일부 비상장기업의 가치가 치솟기 시작하면서 상장 직전 단계(프리IPO)의 기업을 발굴하는 증권사가 기업가치 책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모험자본 투자를 장려하고 있는 데다 고수익 투자 상품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은행이나 증권사 모두 벤처투자를 새로운 수익원이자 정책 방향에 맞춰가려는 수단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상장기업 뿐만 아니라 비상장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 등 직접금융 영역도 완전한 금융 영역으로서 자리잡아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