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 자동차산업의 지각변동

세계 자동차업계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포드의 마쓰다 지분인수가 빙산의 일각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자동차업계의 인수합병 또는 협력체제 구축논의가 활발하다.

도요타자동차와 마쓰시타전기가 합작사를 설립, 전기자동차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한 것을 비롯해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던 미국과 유럽연합의 자동차업계가 자동차산업 합리화란 대명제 아래 양 지역 자동차 관련제품의 표준화에 합의했다.

또한 「아시아인에게는 아시아車를 판다」는 지역밀착형 전략에 따라 미·일 메이커들이 아시아카 개발에 주력하는 등 상식을 초월한 사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 요즘 세계 자동차업계의 흐름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사는 것은 일본이고 파는 것은 미국」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업계의 이상기류다.

물론 그동안에도 자본을 포함 생산·기술·연구개발·판매 등 주요 분야에서의 부문별 전략적 제휴가 빈번히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재삼 주목하고 경계하는 것은 민간기업을 첨병으로 내세우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개방 전략이 선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철옹성과도 같은 일본 자동차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민간기업인 포드를 통해 해결(마쓰다 경영권 인수)한 것과 같은 新시장개방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기아자동차 지분의 16%(포드 9.39%, 마쓰다 7.52%)를 갖는 최대주주인 포드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아측은 두 회사의 경영권 행사가 제한돼 있고 소유지분을 처분할 때는우선적으로 협의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세계 자동차업계의 판도변화는 우리 기업에도 사활이 걸린 문제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지난 92년 미국 보스턴 컨설팅그룹(BCG)이 『전세계 완성차 메이커중에서 향후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는 상위 10개사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MIT대학도 2000년대에는 10여개 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당시 BIG그룹은 미국의 빅3인 GM·포드·크라이슬러, 유럽의 폴크스바겐·푸조·르노·피아트 4사, 일본의 도요타·닛산·미쓰비시·혼다·마쓰다 중3사 등 10개사를 유력한 시장지배회사로 꼽았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러한 전망과 가설은 국제 과점화설에서 나온 시나리오에 불과하며 대국주의적 발상이라고 보기도 하나 적중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 가설이 향후 세계 자동차산업의 재편가능성을 예고하고 이에 대비해야살아남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기업들도 2000년까지 연간 생산규모를 700만대로 늘리고 해외기업을인수해 세계 10위권으로 부상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9개 완성차업체(대우중공업·삼성중공업 포함) 중 빅3에 해당하는 현대·대우·기아는 모두 오는 2000년 국내외에서 200만대 안팎의 생산체계를 구축할 방침이고 후발인 삼성자동차는 2010년 쯤으로 목표시기를 잡고 있다.

이 모든 것이 10위권 안에 들어야만 살아남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수립한전략이나 세계 시장은 고사하고 내수시장을 지키기도 버거울 정도다. 우선일본산 승용차에 대한 수입규제(수입선 다변화조치)가 예정대로 98년에 완전해제되면 뛰어난 품질과 저렴한 물류비, 그리고 효과적인 판촉수단을 갖고있는 일본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본격 공략하면서 국내업체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수출시장에서도 시기는 다소 유동적이나 최대 수출시장으로 부상한유럽연합의 수입규제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조만간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위기를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가속화되는 산업재편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희망의 21세기는 남의 얘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 지금부터라도 외형경쟁은 자제하고 연구개발투자를 늘리는 한편 핵심부품 자급과 설계기술 확보에 사력을 집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