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표적인 민영방송 ITV가 공영방송 BBC를 상대로 「공영성 강화」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 방송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ITV의 신임 리처드 아이어 사장이 「광고주가 아닌 시청자를 위한 방송」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자 전문가들은 ITV와 BBC의 본격적인 경쟁을 점치고 있다.
ITV의 주 공격대상은 최근 점유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BBC1.
ITV는 94년 시장점유율이 44.3%까지 치솟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영국내 대표적인 민영방송. 그러나 94년 이후 하락세를 거듭, 최근에는 점유율이 38.8%로 떨어지는 등 고전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공영성을 내걸고 있는 BBC는 꾸준하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ITV 부진의 근본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체원인보다는 시장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지상파를 비롯한 케이블, 위성방송 등 다채널이 압도하는 시장환경 속에서 ITV의 강점인 상업적인 프로그램이 폭증, 결국 시장지배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영국의 방송계는 BSkyB처럼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의 시장확대로 인해 상업적 프로그램의 경쟁구도는 엄청나게 격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ITV가 Ch4나 Ch5 등 민영 지상파TV와 직접 대결하지 않고 공영방송인 BBC를 걸고 나선 까닭은 광고주 탓이다. 그동안 ITV는 광고주들로부터 광고요금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불평을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ITV가 민영 공중파TV와 시청률 경쟁을 벌여 결과적으로 시장확대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광고주 이탈현상을 막을 길이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BBC를 걸고 넘어졌다는 분석이다.
ITV로선 눈앞의 재미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공영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고 시청률도 제고될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에 따라 ITV는 그림 위주의 화려한 게임쇼 대신에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사실적인 프로그램 장르에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물론 드라마나 스포츠 등에도 신규투자를 계속할 예정이지만 전반적으로는 BBC 시청자층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부유층과 젊은층을 주 공략대상으로 삼을 방침이라는 것이다. 자주 비판받아 왔던 코미디도 내용을 수정하고, 월드컵을 겨냥한 쇼 프로그램을 새로 기획하며, 교양성이 강한 새 드라마도 방송할 예정이다.
ITV는 간판뉴스인 「10시 뉴스」까지도 시간대를 옮길 것을 검토했으나 제작진의 반대로 일단은 현행 편성시간을 고수하기로 했다.
ITV의 「BBC 따라잡기」작전에 대한 BBC의 반응은 자신감에 넘친다. BBC1의 성공은 모든 장르에 걸친 프로그램의 성공에 의한 것으로 광고주의 구미 하나에만 영합하지 않고 시청자 전체의 이익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결과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ITV가 BBC의 흉내를 낸다고 금세 시청률이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교훈적인 접근보다는 퍼스낼리티에 의존한 화젯거리 양산에 얽매여온 ITV 프로그램.
ITV가 갖고 있는 프로그램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선 프로그램 자체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BBC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조시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