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정이 나가자 그는 다시 만화책을 들고 보기 시작했다. 내가 옆에 서 있자 그는 자리를 권하면서 말했다.
『다리 아픈데 서 있지 말고 앉아서 만화책이나 보소. 여기서 할 일이란 이것밖에 없어요.』
나는 또다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기계는 알아서 돌아가니 우리가 할 일은 만화를 보는 일뿐이라는 투였다.
어쨌든 서 있을 수는 없어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도 만화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것은 초등학교 다닐 때와 중학교 시절이었다. 그후에는 만화가 싱거워서 읽지 않았다. 양창성이 읽고 있는 만화를 곁눈질해 보니 전설의 고향 같은 괴기물이었다. 무덤에서 귀신이 나와 원한을 갚는다는 내용인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다음을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양창성은 만화를 보면서 이따금 킥킥거리고 웃었다.
기계는 돌아가고 테이프는 한없이 감겼다. 얼마가 지나자 나는 심심해져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선배님. 독서하시는데 말을 시켜서 죄송한데요.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뭐, 독서? 하긴 이것도 독서는 독서지. 물어보소.』
독서라는 말이 비꼬는 것으로 들린 듯했다. 그러나 화를 내는 것이 아니고 머쓱해 하는 눈치였다.
『양창성 선배님은 배 선배님의 학교 선배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맞소. 내가 삼년 선배요. 』
『전자계산학을 전공하셨습니까?』
『그렇소. 』
『거기서는 뭘 배우나요?』
『뭘 배우냐고? 만화는 아니지.』
그는 나를 돌아보더니 히죽 웃었다. 나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데 왠지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저는 사실 상고를 졸업했을 뿐입니다. 』
『그건 들어서 알고 있소.』
『그런데, 그런 데 가면 뭘 배우나 궁금해서 물어 보는 것입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컴퓨터를 배울 수 있을지 몰라서요.』
『배울 수야 있겠지요. 대학이라고 별거 아니요. 나는 2년제 전문대학을 마쳤으나, 지금 4년제 학과 과정이 많이 늘어났지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관련 학과를 세운 데가 숭전대(현 숭실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