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인간이 달에 도달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의 역사적인 순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TV로 중계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후 세대가 많아진 것은 물론, 30대 후반의 연령층에서도 TV중계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30년 전 역사적 순간의 뒤안길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을까.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것은 소련. 57년에 스푸트니크호가 우주로 올라가자 미국은 이른바 「스푸트니크 충격」에 휩싸였다. 우주 진출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의 발달에서 소련에 뒤질까 조바심이 난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62년에 「60년대가 가기 전에 기필코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달을 향한 경쟁에서도 소련은 계속 미국보다 한 발 앞서나갔다. 달에 처음으로 무인 인공위성을 보낸 것도, 최초의 우주유영을 한 것도, 또 달을 향해 최초의 유인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도 모두 소련이다.
미국도 착실하게 기술을 축적했다. 이 과정에서 사고도 많이 일어나서 양국은 적지 않은 수의 우주 비행사들을 잃기도 했다. 최초로 달에 간 세 명의 우주 비행사들인 닐 암스트롱, 에드윈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도 사실은 우주 비행사들 중에서 특별히 선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순번대로 훈련을 하다가 앞 순서의 사람들이 사고로 죽거나 다쳐서 우연히 결정된 것이다.
선장인 암스트롱은 해군 전투 조종사 출신으로 한국 전쟁 때 참전하여 78회나 출격한 경력이 있다. 올드린은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한 뒤 공군으로 전속, 한국 전쟁 때 적 전투기 2대를 격추시킨 기록을 지니고 있다. 그는 그 뒤 MIT에서 항공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우주 비행사로 선발되었다. 콜린스도 육사 출신으로 공군에 들어가 시험 비행사를 하던 사람이다.
세 사람은 69년 7월 16일, 아폴로 우주선에 탑승하여 달을 향해 출발했다. 당시 발사기지가 있던 케이프커내버럴에는 무려 1백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직접 두 눈으로 발사광경을 지켜보았고, 전세계에서도 5억명의 사람들이 TV로 발사장면을 주시했다.
그들을 지구 중력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36층 높이, 3천8백톤의 거대한 새턴 로켓이 발사되었으나 막상 나흘 동안의 달 여행에서 그들은 택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거의 옴짝달싹 못하고 지내야 했다.
7월 20일, 마침내 아폴로는 달에 도달했다. 달착륙선 이글호가 사령선 컬럼비아에서 분리되어 천천히 달 표면으로 내려갔다. 사령선에 남은 콜린스는 이후 혼자서 달 주위를 돌며 이글호의 임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컬럼비아가 달 뒤로 들어가면서 40분 정도 지구는 물론 이글호와도 완전히 연락이 두절되었는데, 어느 NASA직원의 표현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뼈저린 고독」을 경험한 셈이다.
암스트롱은 달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인류 역사의 어록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긴다. 「개인으로서는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발짝이다」라는 내용이다.
사실 암스트롱은 달에 첫발을 디디면서 그대로 먼지 속으로 쑥 빠져버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아무튼 암스트롱과 올드린 두 사람은 약 21시간 동안 월면 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이륙, 컬럼비아와 합류한 뒤 지구로 돌아왔다. 그들이 남긴 발자국은 운석이 떨어지지 않는 한 50만년 정도는 그대로 보존될 것이다.
지구로 돌아온 그들은 거의 1년 가까이 가족과 떨어진 채 미국 전역과 전 세계 23개국을 돌며 축하와 환영 행사에 파묻혀 살았다. 올드린에 따르면 『그 1년 동안이 내 평생 가장 힘들었던 임무였다』고 한다.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