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느끼는 또 하나의 세상 "컴퓨터 시뮬레이션"

 J씨(30)는 예비 파일럿이다. 지난해 대한항공에 입사해 현재는 미국과 제주도 등을 오가며 여객기를 몰기 위한 연습에 여념이 없다.

 그가 요즘 집에서 주로 하는 일은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98」. 게임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말 직업상 필요에 의해서다. 비록 조이스틱과 키보드를 이용한 비행연습이지만 실제 비행과 거의 같은 느낌과 조작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가 이 게임에 몰두하는 이유다.

 자신이 조종할 기종을 선택하고 비행기를 이륙시키려면 엔진 파워를 차례대로 올린 후 활주로로 천천히 나가 진짜 비행과 똑같이 스로틀(Throttle)을 올리고 활주로를 달려 적당한 시점에서 이륙을 시켜야 한다. 이륙시킨 후 상공에 올랐을 때 바퀴를 올리지 않으면 비행기가 무거워 제대로 날지도 못한다.

 비행기의 종류에 따라 이륙의 시점이나 비행의 느낌이 현실과 마찬가지로 달라지기 때문에 현실감을 느끼는 데 그만이라는 것이 J씨의 말이다.

 J씨처럼 컴퓨터를 이용해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리체험을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것도 전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한 도구로 컴퓨터시뮬레이션을 이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비행사가 PC의 시뮬레이션 비행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실제 비행기를 몰아 볼 수 있고, 카레이서가 경주에 나가기 전에 실제 코스와 똑같은 환경으로 설정된 컴퓨터 환경에서 미리 코스의 점검도 가능하다.

 물론 아직까지 이같은 PC용 시뮬레이션이 완벽한 현실감을 주지는 못한다. 비행사만 해도 실제 비행에 나서기 전에 2년간 실제 비행기와 비슷한 모형 구조물안에서 이륙과 착륙과정을 현실과 똑같이 진행하면서 모의 연습을 거치게 돼 있다. 악천후 같은 기상 환경도 설정해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요령도 배우게 된다. PC용 비행 시뮬레이션은 이것을 조이스틱이나 키보드로 단축시켜 놓은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현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도 머지 않아 쉽게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C의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게임 분야에서는 자동차용 핸들과 브레이크·액셀러레이터를 그대로 모방한 자동차 게임용 조이스틱도 나오고 있다. 가상현실이 좀더 진전되면 PC에서도 충분히 실제로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현실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나 자동차 운전 외에도 골프같이 복잡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러한 대리체험은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러시를 이룬 「골프 98」 「링크스 98」 「잭 니클라우스 5」 등의 골프 게임들은 실제로 있는 골프장의 환경을 그대로 게임으로 옮겨와 바람의 세기, 방향, 타구의 방향 등을 모두 고려해야 제대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설정해 놓고 있다.

 골프에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도 쉽게 게임에 익숙해질 수 있지만 골프에 경험이 많은 광들이 오히려 이 게임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는 경우도 많다.

 패션 디자이너처럼 프로그램 하나만 가지면 일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특수한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마네킹을 만들어 놓고 손으로 옷을 디자인해 실제 옷감을 갖고 며칠 밤을 새워야 샘플을 만들어 볼 수 있었지만, 괜찮은 소프트웨어 하나만 있으면 이 작업을 몇 분으로 단축시킬 수도 있다.

 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몇 가지 필요한 정보만 입력하면 가상 마네킹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색상과 재질의 옷을 만들어 볼 수 있어 전문가의 눈에 가장 멋있는 옷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수백만원대를 넘기 때문에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단점이다.

 아직까지 다소 약하긴 하지만 건축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심시티 3000」 같은 게임은 도시계획을 할 수 있다. 특정한 도시를 지정해 도로를 구획하고, 발전소를 세워 전력을 공급하고 거주 지역과 공장 지역, 사무 지역 등을 나누어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아직 3차원 그래픽 지원이나 현실감이 다소 약한 것이 흠이지만 앞으로 조금만 더 발전하면 도시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도우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문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리체험을 할 수 있는 길은 이같은 PC 시뮬레이션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버 스페이스의 발달은 컴퓨터 혹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대리체험을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주고 있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가장 발달하고 있는 대리체험 분야는 역시 연애 시뮬레이션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여러 가지 장애요인 때문에 어려웠던 이상형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준다. 최근 천리안에 개설된 「이상형! 난 캐릭터로 만든다(go Mytype)」 같은 서비스나 유니텔에 개설된 연애 시뮬레이션인 「콩당콩당 사랑여행(go Lovetrip)」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상형! 난 캐릭터로 만든다」는 평소에 그리던 이상형의 모습을 캐릭터로 창조하는 것이다. 머리 속에서만 떠올리던 이상형을 몇 가지 질문에 답만 하면 비슷하게 그려 내주기 때문에 10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서비스를 개발한 업체에서는 앞으로 3차원 동영상으로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어서 머지않아 내가 만든 이상형이 컴퓨터 속에서나마 함께 살아가는 시대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 「콩당콩당 사랑여행」은 2달간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같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정성을 쏟아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뮬레이션이다. 평소 연애에 자신이 없었던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면 이성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체험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이같은 대리체험분야는 컴퓨팅 환경의 발달로 훨씬 다양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과 주변기기의 발전은 수년내에 가상현실 장비의 도움을 얻어 현실과 똑같은 느낌을 갖는 비행 시뮬레이션이나 자동차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발전은 인터넷에 말 그대로 새로운 가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 현실세계와는 다른 직업을 갖고 가상사회에서 또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작업을 하고 심지어 사랑도 나누는 시대가 멀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