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태산씨 부탁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비서실이라고 말하던 여자가 물었다.
『사장님은 지금 간부 회의중인데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난 최영준이라는 사람입니다.』
『회의중이시지만 메모를 전할 테니 잠깐 기다리세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잠깐 뜸을 들였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서 「어떤 놈이야?」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여자가 무엇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조금 있으니 방태산이 전화를 받았다.
『니 최영준이야?』
『형, 오래간만이오. 출판사 사장님이 되었어요?』
『반갑다. 니 컴퓨터회사에 있다는 말을 들었지. 하는 일 잘 되냐?』
『난 늘 그렇지요, 뭐. 그런데 형 사업을 시작했어요?』
『아냐, 시팔, 사기 좀 치고 있지. 책 외판을 좀 하고 있는데 잘 안돼. 몇 년 만이지? 오래간만인데 내 사무실에 한번 와라.』
그렇게 해서 나는 그날 조금 일찍 퇴근하면서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조직 폭력배로 있던 방태산이 마음을 잡고 서적외판을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종로 5가 골목의 낡은 건물 4층에 있었다. 이십여평 정도 되어 보이는 방은 비교적 넓어 보였다. 책을 쌓아 놓는 창고는 다른 곳에 있었고, 그곳은 책상과 의자만이 놓여 있었다. 사무실에는 직원이라고 해야 비서실이라고 나에게 말하던 여자 혼자만이 있었고, 방태산이 커다란 책상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는 소년 시절에도 그랬지만 몸집이 작고 깡마른 편이었다. 그러나 매서운 눈매에는 항상 독기가 서려 있었다. 저녁이 되자 서적 외판을 나갔던 직원들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자 그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다.
『책 파는 일이 잘 됩니까?』
『되긴 뭘 잘 돼. 그러나 그런 대로 유지는 하고 있지. 대단치는 않지만 떳떳하게 산다는 것이 보람 있지 않겠니.』
『그런데 책을 좀 가려서 팔아요. 좋은 책도 있는데, 잠자리 테크닉 서른여섯 가지 뭐, 그런 책이 끼어 있으니까 좋은 다른 책도 품위가 떨어져 보이잖아요.』
『넌 몰라서 하는 말이야. 그런 책이 은근히 잘 팔리고 있어.』
『잠자리 테크닉이 모두 서른여섯 가지뿐인가요?』
『궁금하면 그 책을 사서 읽어보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