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연구개발 이대로 좋은가

배순훈 KAIST 초빙교수

외신보도에 의하면 87년부터 97년까지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연구개발 투자액의 비중은 스웨덴 다음으로 세계 2위다. 그 뒤에 일본·미국·스위스·독일이 쫓아오고 있다.

그러나 결과로는 첨단기술 제품의 대미수출의 경우 전자부문에서 일본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 통신이나 생명공학부문에서는 동남아 여러 국가들에 뒤지고 있다. 특히 타이완과 말레이시아의 선전이 눈에 띈다. 이것이 연구개발분야에서 우리의 성적표다. 성적표가 이렇게 나올 줄 미리 알았으면 준비를 다른 방향으로 했을 것이다. 지금부터 향후 10년간의 성적표는 어떤 식으로 계산될 것인가.

출연연구소의 기금이 바닥나고 매년 상향조정되어야 하는 연구노조의 임금을 충당하기 위하여 정작 연구원의 보수는 하향조정되어야 하는 판이고, 연구소 경영진은 매년 예산 투쟁에 매달려야 한다. 올해도 국정감사차 방문한 국회의원들은 문간에서 노조와 한바탕 실랑이를 치러야 했다.

과학기술계의 원로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통령이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하여 문민정부에서는 과학기술자문위원회를 좀더 격상하여 운영했고 국민의 정부에 와서는 통합이사회를 총리 직속으로 운영하고 있다. 연구의 중복투자가 문제라고 하여 새로 만든 제도인데 연구원들은 중복투자 이전에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없고 그 많다는 연구개발비를 어떻게 확보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불평이다.

내년이면 인터넷 이용자가 3000만명을 넘어 우리나라가 지식정보 선진국이라는데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연구원들은 연구비가 적다고 불평만 하든가 아니면 벤처기업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정보통신분야라면 해외취업도 가능하다.

기업들은 많은 투자를 하여 기술자 연구원을 육성해 놓으면 스카우트로 경쟁기업에 빼앗기든가 또는 기술을 훔쳐 달아나 버린다고 불평하고 있다. 기술자들은 내부에서 승진하는 사람은 법이나 재무를 전공한 사람들이지 좁은 분야의 기술전문가는 출세를 못한다고 불평한다.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기술자들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도 사실이다. 기술자가 기업의 경쟁력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늘 단기적 유동성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급한 대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연줄을 가진 사람을 우대할 수밖에 없었으니 기술자를 상대적으로 박대해 왔다.

이제 우리는 지식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남에게서 배울 수 없는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고 지식을 활용하여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주는 기술을 우리 스스로 개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인터넷 사용자수가 3000만이 넘어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확산된 정보인프라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이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야 하고 국민소득이 올라가야 진정한 의미의 지식정보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이것은 코드화된 정보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내장된 정보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가 정보기술이 있어야 한다.

연구개발정책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우선 연구자·기술자·기술사용자·교육자 모두가 참여하는 네트워크의 기본 규칙에 합의해야 한다. 대통령은 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이 틀의 근간이라고 주창했고 반대가 없었으니 국민 모두가 합의한 셈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일부 계층의 권한을 제한하여야 하고 시장경제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경쟁의 패자와 승자의 보상을 차별해야 한다.

권리가 확대되거나 경쟁에서 승자의 보상문제는 어려운 게 아니지만 권리가 축소되거나 패자의 문제는 쉽게 합의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축소지향적인(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우리 경제상황에서는 공동투쟁을 목표로 하는 노동조합원의 임금이 줄어야 하고 단일 임금체계에 의하여 무임승차해 온 실적 없는 연구원의 보상이 줄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과학기술계의 문제는 과학기술자들이 해결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은 우선 비효율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축소하고 과학기술자들의 기존 보상체계 합리성을 생산적으로 파괴하는 데서 시작하여야 한다. 의도적인 혼돈상태를 조성하지 않고는 혁신적인 개혁이 일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