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약품 유통정보화

 의약품 유통정보화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음성적인 유통 관행을 근절시키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부 정책이 장기간 공전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의약품 거래의 투명성 확보는 물론이고 의약분업과 의보수가 인상으로 인해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건전화를 요원하게 하는 등 파문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미 의약품 보관 및 배송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한 의약품공동물류센터 구축사업의 경우 이권에 집착하고 있는 의료 도매상들의 거센 반발로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의약품 전자상거래의 초석이 될 유통정보센터가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등 의료 유통체계를 선진화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차질을 빚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제약업체와 일선 의료기관을 전자상거래라는 큰 틀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견인책이 없다는 것이다. 의료보험공단이 직접 의약품 공급업체에 약제비를 지불토록 하는 의약품대금직불제도가 유일한 방책이었으나 이 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등 이마저 무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정보시스템을 활용한 의약품 유통개혁 정책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 같다. 300억원을 투입해 지난 7월부터 본격 가동 중인 의약품유통정보센터의 파행 운영은 이런 우려를 현실화하고 있다. 의료기관은 대금직불제 시행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제약업체들은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고 대금정산 기능이 없는 상태에서 가입하는 것은 기업의 채산성만 악화시킨다며 가입을 꺼리고 있다.

 물론 관련 부처에서 실현이 불가능해진 약제비 직불제도 대신 의약품 실거래 가격 및 공급내역 신고의무제 도입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유통정보화의 핵심 주체인 의료기관과 제약업계를 끌어들이는 일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전국 35개 지역배송센터를 연결해 전국에 산재한 요양기관과 의약품도매상들에 의약품을 실시간으로 수배송토록 하는 의약품공동물류센터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1년 전에 정보전략수립(ISP)을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매상들간 이권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아직 시스템 구축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의약품유통정보센터와 공동물류센터를 연계하는 의약품 물류체계를 구축해 전국 의료기관을 상대로 의약품 전자상거래를 실시하겠다던 정부의 의료정보화사업이 과연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 병·의원과 약국간에는 전자처방전달시스템을, 제약사와 병·의원 및 약국간에는 의약품유통정보화시스템을 설치해 의료 및 의약품 거래를 투명하게 하겠다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제정의 건전화를 위해 의료보험 EDI 및 전자처방전달시스템 도입, 의약품 유통정보화, 전자건강보험증제 도입, 재정지원을 통한 병·의원 정보화 추진, 건강보험법 등 의료보험 관련 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욕만 앞세우다보면 파행으로 치닫게 된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성패를 좌우하는 국가 정보화사업은 더욱 그렇다.

 음성적인 의약품 거래 근절과 의료보험 재정 정상화를 위해서는 의료정보화가 시급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등 공감대 형성을 통해 의약품 유통정보화사업을 조기에 정상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