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컴퍼니>IT업게 게임고수 3인방

 ‘길을 가다가 함께 가는 친구들은 아군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적으로 느껴져 가상적인 전투 발생시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으려 한다. 또 날아다니는 참새들이 적의 비행체로 느껴져 도망가려고 하고 길바닥에 떨어져있는 반짝거리는 것들은 고급 아이템이 아닐까 하는 착각으로 설레곤 한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 조금은 심각하게 들리는 이 얘기는 바로 프로게이머 수준에 달한 게임 전문가들이 겪는 중독증세다. 게임에 몰두하다 보면 현실과 게임 사이를 오가는 이런 착각현상들을 경험하게 된다는 게 게임 고수들의 전언이다.

 국내 IT업계에도 온라인 제왕의 부활을 꿈꾸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있다. IT분야에서 게임을 잘한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앞서 말한 착시현상을 수시로 느끼는 이들은 분명 고수임에 틀림이 없었다.

 IT업계 게임 고수 3인방을 만났다.

 폴리픽스 사업개발본부 배주한 과장(32). 게임경력 5년인 그는 재미있는 온라인 게임들은 한번 빠지면 며칠 밤을 지새며 어느 정도 게임에 능숙해질 때까지 그 게임에만 몰입하는 마니아. 오메가(그의 ID)로 통하는 그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게임바닥에서는 형으로 불린다.

 지난 98년 겨울, ‘레인보식스(RainBowSix)’라는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게임세계로 들어온 그는 99년에 윙스(Wings)에 가입하면서 실력을 발휘, 99년에는 케이래더(K-ladder) 사이트에서 시즌 랭킹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게임을 즐기지만 그 중에서도 주력은 ‘레인보 식스 오리지널’이다. 또 ‘스타크래프트’ 배틀넷 전적은 4000게임 정도며 ‘디아블로(종족별 레벨:80∼90)’와 ‘포트리스’도 수준급이다. 평일에는 업무량이 많아 게임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는 그도 대부분의 주말에는 게임 동호회 회원이 즐겨 모이는 게임방에서 하루정도 밤을 새면서 게임을 몰아서 한다. 게임 일변도의 주말이 오히려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그는 설명한다.

 “올 초 게임관련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게임에 대한 경험이 제안서 작업 및 PT때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게임업계 동향 및 고객요구 분석 등). 또 국내 IT업계의 큰 흐름 중 하나가 게임관련 사업이다 보니 그간의 게임경력들이 업무에 큰 도움을 줍니다.”

 폴리픽스 김재영 주임(29)의 게임경력은 6년이다. 그의 게임이력은 화려하다. 동네 오락실에서 하는 아케이드 게임부터 플레이스테이션까지 안 해본 게임이 없으며 대학 시절에는 친구가 게임방을 경영한 덕택으로 일주일을 PC앞에 붙어 지낸 적이 부지기수다.

 지난 97년에 ‘사보타주(Sabotage)’라는 철권3 동호회에서 분당에 거주하는 멤버위주로 활동을 하다가 99년에는 자신이 직접 ‘Wings’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활동을 해오고 있다.

 게임이력이 바탕이 돼서인지 그는 평소에는 오히려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역시 결코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WCG2001 시범종목 대회에 출전했으며 게임동호회에서 우승도 차지할 만큼 고수로 통하고 있다.

 “게임을 하다가 약속이 1시간 후에 있어서 1시간만 하고 가야지 하다가 시계를 보니 10시간이 지나버린 일이 보통이죠.”

 네트로21에 근무하는 서정국씨(26)는 경력 만4년으로 게임 3인방 중 막내다.

 젊어서인지 게임에 대한 그의 사람은 정열적이다. 그는 게임을 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을 정도다. 밥먹고 잠자고 업무시간 빼고 시간 날 때마다 게임을 한다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 삶을 살고 있는 셈. 그 역시 레인보식스로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할 정도의 고수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고수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클랜래더(clanladder.com)라는 랭킹을 관리해주는 사이트에서 당시 세계 톱을 유지하고 있는 EKG라는 유럽게이머를 상대로 한발 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30분간 서로 눈치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의 책상머리에는 ‘일하는 시간에는 일에 집중을! 게임하는 시간엔 게임에 집중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가 왜 이런 글귀를 써 붙였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