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속빈 강정` 기술 경쟁력

우리나라의 첨단 핵심 기술력이 전자와 반도체를 제외한 전 분야에서 세계 수준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기술투자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하는 결과라는 점에서 기본 설비투자는 물론이고 기업들이 R&D 투자를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유력한 공학과학 잡지인 MIT테크놀로지리뷰가 세계 우량기업 860곳을 대상으로 핵심 특허 기술력을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은 전체의 2% 미만인 13개 업체만이 순위안에 든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만이 유일하게 전자부문에서 톱10에 들어 6위에 올랐지만, 그것도 2002년 4위에서 두 단계 밀려난 것이라 세계 기술력 판도에서 우리 기업들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를 쉽게 짐작하게 한다. 통신·화학·자동차 분야에서도 KT·LG화학·현대자동차 등 굴지의 국내 기업들이 중하위권에 머물러 우리와 세계 유명업체들과의 기술 격차가 생각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바이오를 비롯한 의학·항공우주·컴퓨터 분야는 단 한 개의 기업도 순위에 들지 못해, 차세대 기술 경쟁에서 뒷전으로 밀려 나지 않을까하는 심각한 우려마저 낳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MIT테크놀로지리뷰의 평가는 그동안 첨단 기술을 집중 육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하던 정부와 우리 기업들이 세계 일류 기업의 투자 패턴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기초분야 연구 투자에 소홀했던 결과임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틈이 날 때마다 첨단 원천기술 연구 개발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구호와 행동이 따로따로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중요함과 필요성은 절감하면서도 매출 증대와 수익 확대 등 양적 성장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R&D부문에 투자한 경우에도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초기술 연구에 집중하기보다는 지나치게 상용화 기술에만 치중해 R&D투자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도 문제다. 따라서 매출이나 자산 등 당장 눈에 보이는 양적 지표는 높지만 향후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에 대한 질적인 지표는 형편없이 낮아 이에 대한 보완적인 투자가 절실하다. 이런 우리와는 달리 미국이나 일본 업체들은 기술력 있는 벤처 M&A를 통한 기술 확보는 물론, R&D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어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R&D 투자에 소홀한 책임을 기업들에게만 묻고 싶지는 않다.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했던 배경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정쟁과 이념 논쟁으로 사회가 극도로 불안해지고,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던 정책들이 기업들의 투자 의욕에 찬물을 끼얹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리 기업이 돈이 있더라도 향후 전망에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도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한 투명한 정책을 내놓는 등 적극적인 유인책을 펴야할 것이다. 이제 기업들도 모양새만 중시하는 구태의연한 양적 성장 위주의 경영에서 벗어나 앞날을 내다보고 대비하는 실속 위주로 경영 마인드를 전환해야 한다. 또 R&D 투자를 국가나 대학에만 의존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이번 평가서는 양적 성장에만 안주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 정부와 기업에게 자성의 기회를 준 좋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