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운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특히 최근 고용문제가 화두로 등장하면서 많은 이들이 그 원인을 기업들의 투자부진에서 찾으려 한다. 정부는 기업에 투자를 요청하나 주주가 반대하면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투자 부진의 이유를 정부의 정책 경향이나 국민의 반기업적 정서 같은 데서 찾으려 하는 것은 감정과 정치적인 뉘앙스가 섞여 있어 문제의 핵심을 가린다. 경제 내적 관점에서 투자 부진의 이유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 합당한 순서일 것이다.
먼저 한국 경제가 과거 노동집약적, 자본집약적 산업단계의 요소투입형 경제에서 성장 가능한 혁신주도형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매력적인 투자 대상 자체가 마땅치 않게 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실 성장 시대는 소비자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던 양적 경제의 시대다. 이때는 소위 사업거리가 곳곳에 있었고 투자의 위험과 기대 수익의 전망 또한 상대적으로 분명했다.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 사회적 여건도 기업가의 투자 결정에 유리한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의 양상은 완전히 변해 소비자는 ‘필요’가 아니라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상상력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루어내기 전에 사업거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게 되었고 투자에 따른 위험과 기대 수익을 예측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기업투자와 관련된 또 하나의 변수는 기업을 둘러싼 제도가 기업들이 위험 내지 모험을 기꺼이 감수하기 어렵게 변해버렸다는 점이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기업들이 재무적 리스크 관리와 비용효율성 위주의 가치 보존형 역량제고에 주력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강하게 요구하게 했다. 이 방식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혜택은 분명하나 동물적 직감에 의한 기업가 정신의 발현과 이에 따른 투자결정은 어렵게 만들었다. IMF 위기 이후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시 더 많은 것이 고려돼야 했고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투자부진 속에서의 투자 내막을 보면, IT업종은 확실한 성장산업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선 국내 투자가 양호한 편인 듯하다. 하지만 이 업종의 특성상 투자에 따른 설비를 해외에서 도입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 기계류 산업의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고 글로벌 소싱의 영향으로 투자의 전후방 효과도 낮은 편이다. 대표적 지식집약적 산업이지만 투자에 따른 고용창출효과가 크지 않으며 고용에 대한 수요도 지식근로자에 국한되는 형편이다. 중후 장대형 산업은 현재 경쟁력이 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대부분 세계적 공급과잉 산업인 편이며, 설비 확장의 필요가 있어도 고도의 자동화를 추진하여 고용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고 투자 자체도 국내보다는 해외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서비스업의 사정을 보면 지식형 서비스업은 시장 개방 압력에, 단순 서비스업은 자체 과잉경쟁 압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복잡한 정부 규제, 기득권을 가진 쪽의 반대 등으로 인해 혁신과 기업의 대규모 투자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엔 막막해 보인다.
무엇을 해야 하나.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통해서 어렵지만 투자를 해내야 한다. 우리 상황에서 이것은 회사 주식 가치를 올리는 것처럼 기업가의 의무다. 정부는 기업관련 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는 방식으로 정비해 기업가 정신이 움직이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근의 벤처산업 활성화 움직임은 이런 측면에서 우리 방식으로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는 시도라고 본다.
하지만 요소투입형 경제에 익숙한 기업가들이 누가 혁신에 성공하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관성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로 인한 과당경쟁의 폐해가 심각하지만 우리 시장은 스스로 이 폐해를 정화해 줄 역량이 없다. 시장 내부적으로 역량을 갖출 때까지는 정부의 정책기능이 정화작용에 도움을 주어야 하며 선택 지원 기능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분야는 아직 시장이 개방되지 않아 경쟁력이 취약한 지식 서비스에 있다고 본다. 이 분야에서 각종 시장 진입장벽을 과감히 풀어 시장이 제 기능을 하고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을 서둘러 조성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의욕을 불러일으키고 고용을 촉진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과 정부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지식경제, 글로벌 경제로의 전환을 정확히 인식했을 때 장기적이고 의미 있는 투자·고용·성장의 선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신 뉴딜정책이나 예산의 조기집행 등과 같은 대증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임은 모두 알지 않을까.
◆변대규 휴맥스 대표 ceo@humaxdigit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