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이 운다’는 서로 다른 인생 여정을 거쳐 온 두 남자가 사각의 링에서 격돌하는 이야기다. 태식은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로서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서는 정상급이었지만 은퇴 후 도박으로 돈을 잃고 빚보증을 잘못 서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등 불운이 겹친 데다 운영하던 공장마저 불이 나서 잿더미가 되자 집은 차압당하고 부인은 이혼을 요구한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글로브를 들고 광장으로 향한다. 자신이 인간 샌드백이 되어 스트레스에 쌓인 시민들에게 맞아주는 대신 남자에게서는 1분에 만원, 여자는 2분에 만원을 받는다. 초등학생 아들은 아버지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아내에게는 돈 많은 남자가 생겨서 그의 곁을 떠나 재혼하려고 한다. 그는 42살의 나이에 프로 복서가 되기 위해 신인왕전에 출전한다.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
상환은 동네 후배들에게서 돈이나 삥 뜯는 불량 청소년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산다. 상환은 패싸움에 잘못 끼어들었다가 합의금이 필요하게 되자 늘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동네 유지를 공격했다가 붙잡혀서 소년원에 수감된다. 소년원에 들어온 첫날, 자신을 무시하는 권투부 짱과 처절한 대결을 벌이며 그의 귀를 물어뜯어 독방에 수감된다.
상환을 눈여겨본 교도관의 추천으로 권투부에 들어가서 권투를 배우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할머니마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상환은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신인왕전에 출전한다.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
태식과 상환이 만나는 것은 영화의 종반부, 신인왕전 결승전이다. 그전까지 서로 아무런 관련 없이 전개되던 두 사람의 일생은 비로소 링 위에서 처음 만나 격돌한다. 누가 이기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면 이런 구성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자 처절한 사연으로 벼랑 끝에 몰린 두 사내가 링 위에서 재기하겠다는 불타는 의지다.
류승완 감독은 테크닉을 버리고 진정성으로 승부하려고 한다. 모든 것 잃고 인간샌드백이 되었던 42살 거리의 복서 태식이나 소년원 출신 20살 상환의 삶에는 땀 냄새가 배어 있다. 무엇보다 저 낮고 어두운 터널의 바닥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진솔하게 살아 있다. 특히 아무런 관련 없이 교차 편집으로 진행되던 두 사람의 인생이 만나 비로소 격돌하는 후반 15분의 신인왕전은, 생존본능의 처절함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프로권투 신인왕 결승전은 반드시 승부가 나야 한다. 두 사람 중 하나는 승자가 되고 다른 하나는 패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마지막 결승전이 진행되면 누구도 응원할 수 없다. 이미 그들의 아픈 삶, 절절한 사연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누군가 패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관객들의 그런 심리적 움직임은, 교차 편집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의 구성이 성공했다는 방증이다.
이것은 드라마가 약하던 류승완 감독의 영화가 튼튼한 서사구조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뜻이지만, 그러나 2시간 13분의 러닝타임이 꼭 짜임새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인생역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조금 완만하게 전개되는 흠이 있고 너무 대칭적으로 전개되는 두 사람의 삶은 인위적 느낌을 준다.
그러나 우리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진정성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다. 진심으로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반드시 전달이 된다. 더구나 최민식 류승범같은 뛰어난 배우를 통해서라면야 더욱 그렇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