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작도 못한 나노공정 장비 실용화 사업

 정부와 학계·기업들이 함께 기획한 나노 공정 반도체 제조장비 실용화 사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중단위기를 맞고 있다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차세대 반도체 장비 국산화를 위해 대형 국가연구개발 실용화 사업의 하나로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추진해 온 실용화 사업이 중단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최근 재원 확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가 추진키로 한 사업이 무산될 처지에 있다니 당장 해당 기업들의 실망감이 대단할 것이다. 더욱이 지난 5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실무조정 결과 이 사업을 추가검토사업으로 분류해 정부가 이 사업을 그대로 추진할 것인지조차 분명히 하지 않아 업계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 사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키로 해 놓고 이제 예산이 없어 하기 어렵다는 것은 비판 받을 일이다.

 이 사업은 3∼5년 내 실용화가 가능한 전략적 나노장비를 선정해 개발하는 일이다. 당초 계획대로 장비를 개발하면 반도체 전공정 장비 국산화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산업자원부가 주관부처로,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가 협조부처로 나섰고, 이미 산·학·연 전문가를 포함한 차세대 나노반도체 제조장비 실용화 사업단을 통해 실용화가 시급한 60나노급 식각·증착·검사 장비를 국산화 대상으로 선정해 놓았다. 이 장비는 우리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절대 필요한 장비라고 한다. 반도체 장비는 그 특성상 기술 못지않게 실용 검증과정이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우리 중소기업들은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실용화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반도체 공정이 나노 공정으로 전환되면서 국내 장비업계는 어느 때보다 호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장비 국산화가 안 될 경우 해외 업체들과 격차를 해소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나노장비 실용화 사업은 수요조사 결과를 토대로 과제를 선정했고 정부와 반도체업계는 ‘실용화 사업단’을 구성한 후 삼성전자·하이닉스·동부아남 등 수요업체의 참여를 전제로 핵심 아이템 선정 및 실용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 전체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10% 이내에서 조정해 재원을 확보한다는 당초 계획이 무산되면서 추진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정부는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에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확정한 사업은 어떤 경우라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순히 한 아이템의 사업무산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정책의 신뢰성과 연결되는 사안으로 발전할 수 있다. 어떤 정책이라도 정부가 업계나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으면 안 된다. 이번 나노장비 실용화도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면 정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예산 뒷받침도 없이 발표부터 해놓고 지금 와서 나몰라라 한다면 곤란하다. 과기부는 대형 국가연구개발 실용화사업의 재원은 정부 전체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추가 예산이 생기면 별도 지원도 가능하지만 기본 원칙은 주관부처가 스스로 지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재원을 확보해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처음 이 사업에 대해 과학기술 혁신본부에서 기획하지 말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예산에 대한 사전 검토도 없이 발표만 해놓고 몇 개월을 허송한 셈이다. 이 사업에 소요되는 3년 간의 총 예산은 2000억원 규모인데 이 중 업계부담인 600억원은 조달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예산을 확보해 당초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의 경쟁력이 지금보다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